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리걸테크는 법과 기술의 결합을 일컫는 말입니다. 해외에서는 법률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주창하며 몸집을 키운 리걸테크 스타트업이 여럿입니다. 기업가치 1조원을 넘긴 업체들도 나타납니다. 다만 국내서 눈에 띄는 리걸테크 업체는 소수입니다. 생존 환경이 척박하다는 평가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법률 플랫폼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변호사 단체와 갈등을 빚으며 해마다 주목받은 대표적 스타트업입니다. 로앤컴퍼니의 엄보운 커뮤니케이션본부장이 한경 긱스(Geeks)에 리걸테크 업체가 생존해야 할 '이유'를 직접 전해왔습니다.
변호사-국민, 양자 사이 단절된 정보13년 만에 공급이 3배 늘어난 시장이 있다. 변호사 시장이다. 대한민국 등록 변호사가 1만 명이 넘을 때까지 100년(1906~2006년)이 걸렸는데, 그로부터 8년 뒤에 2만 명(2014년)이 됐고, 5년 뒤에는 3만 명(2019년)을 돌파했다. 지금은 3만 2305명이다.
그런데도 정작 국민들은 변호사가 늘어난 걸 체감하기 어렵다. 여전히 '아는 변호사가 몇 명인지' 물어보면 열 명 중 여섯은 "한 명도 없다"고 답하고, "딱 한 명 있다"는 답도 20%를 넘는다. 이는 법원 통계로도 확인된다. 민사소송의 93%가 변호사 없이 진행되는 ‘나 홀로 소송’이다. 형사소송의 절반가량(45.8%)도 변호사 없이 이뤄진다.
'변호사 찾기가 어려운 사회'는 변호사에게도 고역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개업 변호사 1인당 평균 사건 수'는 급락을 거듭해 최근엔 한 달에 1.2건(2018년)까지 떨어졌다. 변호사 숫자가 늘면 자연스레 국민들의 법률 서비스 접근성이 좋아지고 더 많은 법률 조력이 이뤄질 거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국민들은 변호사를 만나기 어렵고, 변호사 역시 변호사 필요한 국민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법률 서비스 수요자(국민)와 공급자(변호사)가 만나지 못하는, 이른바 '미스매치' 문제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뢰인이 만나지 못하는 건, 양자 사이에 정보가 흐르는 연결의 장이 없어서다. 국민들은 ‘자신에게 맞는 변호사’를 찾기 위해 어떤 변호사가 기존에 어떤 사건을 진행했는지,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해야 그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지를 알길 원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꽁꽁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광고 규정에 발목…해외는 '리걸테크 유니콘'도 흔해이는 변호사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현행 광고 규정이 초래한 탓이 크다. 대부분의 광고 방식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방문·전화 광고는 물론이고 우편이나 전단지·현수막 광고도 변호사는 할 수가 없다.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광고가 포털 사이트 '키워드 검색 광고'인데,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비싸다.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의 크기가 제한돼 있어, 비싼 광고비를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변호사가 광고 성과를 독식한다. 게다가 대형 포털사이트들은 ‘경쟁적 비딩(경매) 방식’을 채택해 더 많은 돈을 내는 순서대로 광고주를 노출시키는데, 변호사 입장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변호사만이 자기를 알릴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리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나에게 맞는 변호사’를 찾기 위한 정보를 확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리걸테크 플랫폼으로 풀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푼 기업들은 예외 없이 유니콘 혹은 유니콘 가까이 성장했다. 우리와 법제와 상황이 가장 비슷한 일본에서는 '벤고시닷컴'이라는 변호사-의뢰인 매칭 플랫폼이, 일본 전체 변호사의 19%를 회원으로 확보하면서 일본 마더스 시장에 상장돼, 지난 2020년 시가총액 3조 8000억 원을 달성했다. 지금은 일본 전체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미국에서는 아보(Avvo), 리걸줌(Legal Zoom), 로켓로이어(Rocket Lawyer) 등 법률 플랫폼이 이 문제를 풀었다. 변호사는 자신의 정보를 투명하게 유통하고, 국민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변호사를 찾을 수 있게끔 하여 양자가 모두가 만족시킨 것이 주효했다.
국내선 로톡이 있다. 지난 2014년 세상에 나온 로톡은 서비스 출시 이래 1920만 명이 찾아 총 51만 건의 상담이 연결됐는데, ‘서비스 만족 점수’가 매우 높다. 지난해 연말까지 남겨진 총 5만 9000여개의 후기 평가에서 평균 4.91점(5점 만점)을 얻었다. 얼핏 수치만 보기에는 의도적 ‘어뷰징’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후기를 읽어보면, 한 사연 한 사연이 절절하다.
△갑자기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받은 세입자가 전전긍긍하던 끝에 변호사를 만나 법적으로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제대로 물건을 배달해놓고도 훔쳐 갔단 누명을 쓴 택배기사가 변호사를 만나 결백함을 찾게 된 경우 △오래된 건물의 하자로 천장에 물을 줄줄 새 영업을 하지 못했지만, 도리어 건물주로부터 “수리비를 부담하라”는 통보받은 세입자가 변호사를 만나 원만히 해결한 경우 등 만족스럽다는 이용 후기가 많다.
서비스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그동안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꾸준히 누적돼온 국민들의 불편함 때문이다. 고질적으로 느껴왔던 갈증이 ‘쉽게 변호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쉽게 해갈된 것이다. 그 결과 로톡은 2019년부터 매년 두 배씩 성장했다. 편해진 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이런 법률 플랫폼을 상대로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연이은 고발을 진행하면서, 자체 공공플랫폼을 론칭했다. 로톡을 금지하면서 자체 공공플랫폼을 써달라고 국민들에게 제시한 셈이다. 수억원을 들여 만든 이 공공플랫폼은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출범 115일 동안 141건의 상담이 올라왔는데, 민간 플랫폼에서 하루에 500건 이상 상담이 몰린다는 것을 고려할 때 초라한 성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소비자들이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만족한 지점을 도려낸 채 운영했기 때문이다. 서비스 구석구석이 변호사(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용규칙 상 변호사들의 수임 가격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했고, 해당 변호사와 유료 법률 상담을 한 경우라도 리뷰를 남기지 못하도록 했다.
사람은 한 번 편해진 것에 익숙해지면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국민들이 이미 느낀 ‘해갈감’을 과거의 ‘갈증’으로 되돌리려 하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공급자 중심적인 공공 플랫폼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 지금을 돌이켜보면 “대한변협의 공공플랫폼은 오히려 투명한 정보가 원활히 흐르는 진정한 법률 플랫폼의 필요성을 재확인시켜줬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엄보운 로앤컴퍼니 커뮤니케이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