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화학생물학 전공자가 '인테리어'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도 신기하지만, 그걸로 50년이 넘은 국내 최대 종합가구·인테리어 업체의 몸값을 훌쩍 뛰어넘은 것은 더욱 신기합니다. 오늘의집 운영사인 버킷플레이스의 이승재 대표 얘기입니다.
'남의 집은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구경하고 싶은 심리', 그리고 '나도 잘 꾸미고 싶은데 어찌 해야 될지 모르는 막연함'을 그는 우직하게 그리고 절묘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대표의 성공담과 인터뷰를 한경 긱스(Geeks)가 담았습니다.
서울대에서 화학생물공학을 전공한 이승재 대표는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창업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유명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 생각했다. 2008년 교환학생으로 태국에 방문했던 게 이 대표의 삶을 바꿨다. 미국에서 온 유학생이 '기업가 정신'을 외치며 공유한 창업의 꿈에 크게 감명받은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대표는 2011년 이큐브랩의 멤버로 첫 창업을 경험했다. 태양광으로 쓰레기 부피를 줄이고, IT 기술을 결합해 수거까지 완료하는 솔루션이다. 이 대표는 이큐브랩 사무실 인테리어를 고민하면서 인테리어 사업의 가능성을 어렴풋하게 느꼈다고 했다.
2013년 우연히 방문한 지인의 집. 이 대표는 벽에 자전거를 달고, 와인병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 셀프인테리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비전문가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개성있는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집에 돌아온 이 대표는 그날 부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 이 대표가 찾던 미션이었다. 이 대표는 "모든 공간은 갖고 있는 각각의 잠재력이 있는데 활용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공간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렇게 구상한 ‘원스톱 인테리어 정보 제공 플랫폼’으로 2013년 서울대 창업경진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 아이템으로 이듬해 7월 오늘의집이 탄생했다.
오늘의집은 이후 국내 스타트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올해 상반기 2조원 가량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 종합가구 인테리어 분야 1,2위인 한샘과 현대리바트의 몸값을 합친 것보다 크다. 앱의 월간 이용자 수(MAU)는 507만명(지난 6월 기준). 한샘이 운영하는 한샘몰(16만명)보다 30배 가량 더 많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문제, 더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시작했고, 지금도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이 대표에게 지난 8년 간의 소회를 물었다. 7초에 가구 1개씩 팔리는 앱이 되기까지Q. 이제 오늘의집은 한국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앱이 된 것 같습니다. 전통 산업으로 여겨졌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받는데 창업할 때부터 이같은 성장을 예상했습니까.
A. 제가 창업할 때만 하더라도 20대들은 집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전세나 월세를 살기 때문에 '남의 집에 굳이 왜 투자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인테리어'라는 것 역시 이사할 때 한번 크게 공사를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그러다 취향대로 잘 꾸며진 한 지인의 집에 방문하게 됐는데 '나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관심만 가진다면 자신의 공간을 크게 바꿀 수 있겠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니 방법은 막연했습니다. 가구나 소품을 사는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저처럼 시작도 못할 거고, 시작을 하더라도 고통을 겪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하고 오늘의집을 시작했습니다.
Q. 전문가들의 인테리어 사진 공유 플랫폼으로 시작했고, '온라인 집들이'라는 컨셉으로 일반인들이 자신의 집을 공유하는 컨셉으로 유명해졌습니다.
A.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을 만드는 여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는데 이중 어떤 문제를 가장 먼저 풀까를 고민했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공간에 살고 싶은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각자 취향을 찾고, 또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해 실행에 옮기려면 정보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첫 단계엔 영감을 받을 만한 공간 콘텐츠들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나라도 먼저 잘 풀어보자'라고 생각을 해서 콘텐츠에 포커싱을 했고,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콘텐츠들을 공유하는 실험도 했었고요.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분들이 호응을 했던 건 나와 비슷한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집을 꾸미고 사는 건지 볼 수 있는 콘텐츠였습니다.
Q. '3C(콘텐츠·커뮤니티·커머스)'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여겨지고 있는데, 처음부터 콘텐츠와 커머스를 연결하겠다는 구상을 했습니까.
A. 커머스도 처음부터 먼 계획에는 있었습니다. 원하는 공간을 완성하려면 필요한 과정들이 있습니다. 우선 필요한 콘텐츠를 찾아야 하고, 또 거기에 내가 원하는 상품을 찾아서 구매해 세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크거나 작은 공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정확히 몇 년도에 무슨 문제를 풀겠다는 계획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풀 수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잘 풀어보자라는 관점으로 2016년에 커머스 문제부터 풀어보자고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콘텐츠를 보는 공간과 물건을 내가 찾아서 구매하는 공간이 따로 있었는데, 오늘의집에서 그걸 묶는 실험을 한 겁니다.
Q. 커머스 문제부터 풀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 매출을 만드는 모델이 오늘의집 초창기에는 없었고 이에 따른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콘텐츠-커머스라는 모델이 한국에서 혹은 해외에서도 별로 증명된 적이 없어서 실제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많았습니다. 시원하게 얘기할 만한 사례도 없고, 실제로 이 모델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유저분들이 최종적으로 돈을 지불한다는 것 자체가 서비스에 대한 좋은 판단 기준이 되더라고요. 데이터가 나오니까 서비스를 개선할 때도 이게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수치적으로 파악하게 되면서 오늘의집이 완전히 다른 스테이지로 들어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Q. 지금 오늘의집의 성수기 기준 월 매출은 1800억원 가량, 7초에 1개씩 가구가 팔립니다. 커머스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습니까.
A. 커머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몇 달 전 테스트를 가볍게 해봤는데 나쁘지 않은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실행을 했는데, 도입 초기엔 사실 잘 안 됐습니다. 첫 주는 매출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희도 유저들도 콘텐츠와 커머스를 어떻게 연결해야 가치가 생기는 건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대체 왜 가설과 결과가 다른 걸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보면서 개선하는 여정을 출발했습니다. 특별한 지름길은 없었어요. 부족한 점들을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용자들의 신뢰를 쌓았던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서비스를 겪어보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다 보니까 처음엔 설득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점점 오늘의집이 알려지면서 이 서비스를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글로벌 씨앗 품고…해외로 간다
Q. 지난 4월 2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한국에서의 오늘의집 경험을 글로벌로 확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글로벌 사업은 어떻게 준비 중입니까.
A. 2016년에 한 외국인 유저가 오늘의집에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모든 UX가 한국어고, 한국인들이 쓰는 서비스였기 때문에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죠. 갑자기 영어로 사진을 올리고 또 누군가가 영어로 댓글을 달고.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누가 이 사람 만나러 가보자'고 하기도 했어요. 그 때가 '오늘의집이 한국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로 영감을 나눌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심어졌던 순간이었습니다. 씨앗처럼요. 언어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이 오늘의집을 쓸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를 타겟팅 해서 거기에서만 앱을 쓸 수 있다거나 하는 방향은 아니고, 열린 방향으로 해나갈 예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오늘의집 영어 버전이 됩니다.
Q. 각 국가마다 주거 형태는 물론 시장 상황도 크게 다를 것 같은데요.
A. 글로벌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과 해외가 다르지만 또 비슷한 점들도 많다는 겁니다. 자기 공간을 꾸며나간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어느 정도 연결된 지점이 있습니다. 오늘의집 서비스 이전에도 전 세계를 연결하는 여러 글로벌 서비스들이 있었고, 세상이 이미 어느 정도는 서로 이어져있는 느낌이에요. 한국에서 굉장히 사랑을 받았던 '몬스테라'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몬스테라가 사랑받던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도 그 식물들이 관심을 받았어요. 나라마다 주거 환경이 다르지만, 그 안에서도 공통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Q. '라이프스타일 수퍼앱'이라는 지향을 밝히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A. 과거 오늘의 집이 풀어왔던 문제는 '이사 가는 순간에 어떻게 예쁜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였습니다. 최근에 계속 시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부분들은 이사 가는 순간 말고도 집에 살면서 여러 영감을 받는 순간들입니다. 인테리어에서 일상으로 확장해나가는 것. 예를 들어 공간에 살면서 유지 보수를 해야하는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희가 최근에 투자를 하기도 했지만, 쓰레기를 수거를 더 편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요. 일상과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Q.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이용하는 문화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A. 집은 과거에 잠만 자는 공간이었고, 또 그 다음 단계는 아름다운 공간, 안락한 공간이었는데 이젠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국민의 집 체류 시간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어났고,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집은 단순히 쉬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하는 공간이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가드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업무 환경을 만들어놓고 일을 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많이 듣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파티를 할 수도 있어요. 집에서 누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앞으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개인화될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라는 관점에서도 각자의 개인화된 공간으로 취향이 발전되는 모습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Q. 10년 뒤 오늘의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A. 전 세계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삶의 취향과 일상들을 나누면서 영감을 주고받는 공간. 또 더 풍요로운 내 삶을 사는 데 도움을 받는 공간.
Q. 어려운 과제에 부딪히거나 사업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풀어갑니까.
A. 영화 인터스텔라에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전을 하다 보면 여러 어려운 일들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문제라는 건 해결하기 전까지는 해결책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답을 찾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을 때 대부분의 문제는 다 해결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씩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참, 한가지 더
오늘의집에 '엣지'가 생긴 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주축이 되는 '온라인 집들이' 콘텐츠가 대박을 치면서다. 일반인이 개성있게 꾸민 자신의 집 사진을 보여주면서 직접 설명하는 콘텐츠다. 예쁘게 꾸민 집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과 현실적인 남의 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이 모두 오늘의집으로 몰리며 입소문이 났다. 온라인 집들이는 현재의 오늘의집을 만들어낸 '킬러 콘텐츠'라고 불린다.
2016년엔 콘텐츠에 커머스 기능을 적용했다. 온라인 집들이 사진 속 제품을 클릭하면 곧바로 앱 내 쇼핑 탭에서 구매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제한된 예산 내에서 이뤄진 일반인들의 일상적인 집 소개 콘텐츠는 누구나 '나도 따라할 수 있겠다'는 욕구를 자극했다. 잘 구축해놓은 콘텐츠-커머스 연결 구조는 코로나19 시기에 '집콕' 인구가 늘어나면서 빛을 발했다. 오늘의집 매출은 2018년 72억원에서 지난해 기준 1176억원까지 불었다.
지난 2월 기준 매 7초마다 1개씩의 가구가 오늘의집에서 판매된다. 오늘의집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쇼핑앱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쿠팡·11번가·G마켓 등 대형 온라인몰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오늘의집은 2020년부터는 자체 물류센터를 확보하고 지난해부터 직접 배송에 나섰다. 시공 중개, 이사 서비스까지 추가하며 몸집을 키웠다. 집수리 업체인 ‘집다’, 싱가포르의 온라인 가구 플랫폼 '힙밴'을 인수하는 등 M&A에도 적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