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2일 파업 투쟁을 시작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임금인상 요구안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파업 종료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다만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범위를 놓고 막판 줄다리기에 들어간 상태다. 정부는 파업 종료 협상을 대우조선해양 하계휴가인 23일 전까지 마무리시킨다는 목표지만 공권력 투입이나 손해배상 범위 조율 등 직접적인 개입은 자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청 노사, 손해배상 규모 막바지 조율21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하도급업체 노사는 전날 임금협상 과정에서 사측안인 올해 4.5% 인상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청지회는 기존 30% 인상에서 지난 19일 10% 인상, 20일 5% 인상 등 수정안을 내놨다가 결국 사측안을 받아들였다. 사측은 협상 과정에서 줄곧 4.5% 인상을 주장해왔다. 하청지회가 한때 내년 임금 10% 인상을 요구하면서 교섭이 잠시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하청지회는 이후 내년 임금 인상안을 철회했다. 정부 관계자는 “임금 인상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견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파업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둘러싼 노사 간 이견으로 전날 밤 11시20분께 협상이 종료됐다. 하청업체 대표들은 이후 “민·형사 책임 면제 여부는 개별 업체와 협의한다”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22개 대우조선 하청업체 대표들이 매일 회의를 하는데 업체마다 의견이 다르다”며 “대우조선해양 하도급업체들을 대표하는 인사가 업체 간 이견을 조율해 보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고 했다.
결국 하도급업체들의 강경한 입장에 막바지 파업 종료 협상은 손해배상 여부가 아닌 ‘손해배상 범위’까지 진척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을 돕고 있는 고용노동부도 양측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파업 마무리 협상에서 손해배상 책임 범위는 보통 책임을 지는 조합원 숫자와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기금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금이 풍족하지는 않아 배상 규모를 최대한 감축하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측은 폐업한 하도급업체에서 근무한 조합원의 고용승계 문제에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조선업체들도 ‘예의주시’하도급업체 노사의 교섭 내용과 별개로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조합원들에게 민·형사상 손해배상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법과 원칙대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의 강경한 입장에 대해 경제계 관계자는 “손실을 메우기보다는 불법 파업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을 것”이라며 “비슷한 하도급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청지회로부터 4자 협상 당사자로 지목받은 정부와 대우조선해양 대주주 산업은행은 손해배상 문제에 대해선 직접 개입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 사건에서는 당사자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 관계자도 “손해를 본 개별 기업이 손해배상소송을 하는 걸 막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즉시 공권력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이 23일부터 2주간 하계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하도급업체 노사도 그 전에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암묵적인 마지노선을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도 막바지까지 교섭을 지원하면서 파업 기간을 줄이는 데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곽용희/김인엽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