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스우시 로고 2만 개로 뒤덮인 3층짜리 건물이 등장했다. 위치는 서울 서교동 홍대앞 대로변. 2만 개의 로고 중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나이키 온·오프라인 회원들이 직접 그려 만든 ‘나만의 나이키 로고’들이어서다.
이 매장은 나이키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나이키 스타일 홍대’다. 그동안 스포츠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나이키 라이즈’, 나이키의 혁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 등 플래그십 매장을 세계 곳곳에 세워온 나이키는 소비자가 직접 만들고,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특별한 공간 실험 장소로 서울을 택했다. 이 공간을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디지털, 젠더리스, 그리고 친환경이다.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길 원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욕구를 반영해 ‘누구나 직접 참여하고 알아서 바이럴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구현했다. 피팅룸 콘텐츠 스튜디오가? 바로 찍어 바로 올린다
이 공간은 기존 패션 매장과 완전히 다르게 설계됐다. 디지털 기반의 O2O(온·오프라인 연계)가 그 중심이다.
옷을 갈아입는 피팅룸은 마치 방송 스튜디오처럼 꾸며졌다. 쇼핑하며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 스튜디오는 예약한 사람에 한해 30분간 이용할 수 있다. 그린 스크린(크로마키)이 펼쳐져 있어 다양한 영상을 합성하고 피팅룸에서 관련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바로 SNS에 공유할 수 있다. 피팅룸 배경은 색상과 채도 조절이 가능한 조명이 설치돼 마음대로 분위기를 다르게 설정할 수도 있다.
나이키 스타일 매장 안엔 자신의 취향대로 옷과 신발을 디자인하는 ‘나이키 바이유’, 스니커즈 문화 공간인 ‘SNKRS라운지’와 갤러리 등도 자리 잡았다. 버려진 운동화가 바닥재로…마네킹도 없앴다
이 매장엔 플라스틱 마네킹이 없다. 그 대신 디지털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벽면에 모델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지털 마케팅이 있다. 리사이클링으로 머리를 장식한 마네킹들은 공간에 위트를 더한다. 머리카락은 운동화 끈으로 표현됐고, 저마다 개성 넘치는 포즈를 하고 있다. 어떤 제품에는 증강현실이 적용돼 스마트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 스니커즈에서 뱀이 튀어나오거나, 얼굴 사진에 독특한 코스튬이 합성돼 찍힌다. 나이키 제품들로 만든 거대한 디지털 테마파크인 셈. 나이키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MZ세대 소비자들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족시키기 위해 시즌마다 쓰고 버려지는 리플렛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했다. 모든 안내문은 스마트폰 앱이나 디지털 스크린 안에 표현됐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와 바닥 재료는 리사이클링을 사용했다. 반품된 불량 제품, 버려진 나이키 제품과 고무 등 폐기물을 바닥재와 의자, 테이블 등으로 만들었다. 매장을 가르는 고정장치는 수명이 끝나면 자재를 간단히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로컬 아티스트 다 모인 ‘디지털 테마파크’
공간을 관통하는 건 ‘크리에이티브’다. 3층 매장은 물건을 파는 매장이라기보다 갤러리에 가깝다. 필립킴, 조기석, 오성석, 김나래, 장지혜, 이학민, 람한, 나노, 이경서, 조희준 등이 나이키 브랜드는 물론 스포츠 종목과 기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했다.
버려진 나이키 운동화의 일부를 모아 만든 ‘승리의 여신 니케’ 시리즈는 아티스트 오성석이, ‘가장자리 산책_02’는 일러스트레이터 람한 등이 참여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필립킴은 홍대 거리의 그라피티 등을 표현하는 포스터 시리즈로 한쪽 벽면을 장식했다.
이 매장에선 하면 안되는 질문이 있다. “남자(또는 여자)옷 어디 있어요?”다. ‘카탈로그’라는 코너로 만들어진 옷 진열 공간엔 남녀 구분이 없다. 나이키가 최초로 선보이는 ‘젠더 플루이드’ 매장이다. 남성용, 여성용을 구분하지 않는 대신 ‘오버사이즈M’ ‘루즈핏 S’처럼 옷이 넉넉한지, 슬림한 스타일인지만 알려준다. Z세대를 중심으로 ‘젠더리스 패션’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을 반영했다.
‘나이키 바이 유’는 원하는 방법으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곳. 로고의 위치, 색상, 소재까지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멤버십을 위한 SNKRS라운지는 신발 클리닝 서비스와 함께 나이키가 이끌어온 스니커즈 문화와 디자인 커뮤니티를 한 곳에 묶는 허브 공간으로 설계됐다. 나이키 스니커즈를 소재로 창의적인 페인팅 아트워크를 모두 보여주는 공간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