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자 암호화폐 채굴업체들이 장기 투자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가격이 지속해서 떨어지는 가운데 전기료 등 채굴 비용이 불어나서다. 가격 반등 계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암호화폐 채굴업 전체가 위태로워 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18일(현지시간) CNBC는 암호화폐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의 분석자료를 인용해 비트코인 1만 4000여개가 17일부터 24시간 동안 매도됐다고 보도했다. 18일 기준으로 3억 1590만달러(약 4163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풀린 셈이다.
지난해 1월부터 암호화폐 채굴업체들이 코인을 장기 보유하지 않고 매도하는 추세다. 암호화폐 업계에선 이를 ‘채굴업체의 항복(Minor Capitulation)’이라 일컫는다. 채굴 비용을 충당하려 암호화폐를 매도하는 현상이다. 채굴한 뒤 장기 보유하던 투자방식이 달라진 상황을 나타낸다.
북미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코어 사이언티픽도 지난달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을 대량 매도했다. 6월 안에 채굴했던 비트코인 7202코인을 평균 2만 3000달러에 매도해 총 1억 6700만달러(약 2201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설립된 코어 사이언티픽은 총 18만개에 이르는 암호화폐 채굴용 서버를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 중 하나다. 현재 비트코인 블록체인 채굴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육박한다.
캐나다의 암호화폐 채굴업체인 비트팜스는 지난 6월에 채굴한 비트코인 중 절반을 매도했고, 라이엇 블록체인도 올해 처음으로 부채 상환을 하려 보유한 비트코인의 일부를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가치가 대폭 축소되며 매도행렬에 동참했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분석업체인 코인마켓갭에 따르면 18일 비트코인은 2만 23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 거래일보다 약 3% 상승한 수치다. 소폭 반등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11월 6만달러선을 넘겼던 가격에 비해선 70% 가까이 빠졌다.
가격이 내려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 비용이 급증했다. 채굴업체의 마진율이 지속해서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조셉 아유브 시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전기료 상승과 비트코인 급락세를 감안하면 채굴 비용이 비트코인 1개 가격보다 높을 수 있다”며 “채굴업체를 비롯해 채굴 장비를 담보로 잡은 금융업체들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투자 심리는 급속도로 위축돼 비트코인 가치가 더 하락할 거란 분석도 나온다. 급락에 관한 공포에 과거보다 매도세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암호화폐 시장에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며 직원 감축을 발표했다.
아직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항복’단계를 밟진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트코인 하락장에서 투자자들의 ‘공포에 질린 매도(패닉 셀링)’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케빈 오리어리 ETF인베스트먼트 회장도 “아직 비트코인 가격이 바닥을 찍지 않았다”며 “공포가 극대화되는 상황이 도래해야 비로소 저점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등 가능성을 점친 전문가도 나타났다. 채굴업체들이 잇따라 이탈하게 되면 경쟁이 완화될 거란 설명이다. CNBC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자들의 전체 연산 처리능력을 보여주는 ‘해시레이트’가 감소하면 채굴업체들의 생산성에 개선된다. 지난달 해시레이트는 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 레빗 코어사이언티픽 CEO는 “소규모 채굴업체들이 연달아 채굴 경쟁에서 빠지면 침체를 견딜 수 있는 대형 채굴업체에는 희소식이다”라며 “해시레이트가 축소될수록 비트코인 채굴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