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팬덤 정치'에 빠진 한국 정당

입력 2022-07-18 17:12
수정 2022-07-19 00:04
정당이 위기 상황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당내 권력 쟁투에 빠져 민생이 보이지 않고, 정의당은 제3당의 역할은커녕 존재감조차 없다. 큰 틀에서 본다면 진보세력이 그토록 갈망했던 유럽식 다당제 수립에 실패했다. 21대 총선 직후 총선용 비례위성정당으로 만들어진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이 각각 국민의힘, 민주당과 통합되며 양당제가 강화된 것이다. 양당제 강화는 정의당의 정체성 위기를 불렀고 존재감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 이후 한국 의회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 퇴보의 시작은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를 위해 군소정당의 지지를 얻느라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극력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통과시킨 데서 찾아야 한다. 정당들이 배제의 정치, 닫힌 정치, 특정 세력과 계급을 위한 정치를 한 결과다.

위기 극복 방안은 무엇인가. 정당에 대한 정의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와 다운스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 또는 “선거에서 공직을 획득함으로써 통치기구를 통제하기 위한 이들의 집단” 등 ‘권력 획득’에서 정당의 본질을 찾는다. 하지만 영국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한 원칙에 입각해 공동의 노력으로 국민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모인 집단”으로 ‘국민 이익 증진’에서 정당의 본질을 찾는다.

하지만 유리 정당들은 ‘권력 추구’의 모습만 보이고 있다. ‘국민 이익 증진’은 대국민 립서비스 때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 정권 성공을 위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 주장처럼 이재명 의원을 위한 정당으로 가려는 모양새다. 이재명을 위한 정당 만들기, 윤석열을 위한 정당 만들기이지 ‘국민을 위한 정당 만들기’는 아니다.

서구의 정당들은 엘리트 정당에서 대중 정당으로, 대중 정당에서 지지층 포괄의 국민의 정당(catch-all people’s party)으로, 조직에서는 선거-전문가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정당들은 과거 ‘3김 정치’ 시절의 정당처럼 명사 정당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당 민주당 대표 경선이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대선·지선 패배를 극복하고 국민에게 다가갈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시스템 도입이 논쟁거리가 아니라 ‘친문 정당’ 지속이냐 ‘친이 정당’으로의 전환이냐가 이슈의 전부인 것은 문제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이준석 대표 파동을 볼 때 개인의 일탈행위에 대한 징계라는 측면보다 ‘윤석열 주변’ 세력의 당권 장악 의도가 짙게 드러나 있다.

한국 정당이 미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트럼프식 팬덤 정치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것은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이다. 이재명 의원은 ‘개딸’ 지지에 안주하며 지지층 확장이 닫혔다. 통합의 정치로 나아갈 수도 없다. 이준석 대표는 과거 급식 파동 이후 오세훈 시장의 반성 행보와 달리 20~30대 남성 지지세력 강화로 상황 돌파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은 광신적이고 언어 폭력적 팬덤 정치를 심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법·행정·사법 그리고 지방 권력을 장악하고 시민사회와 언론 지지까지 확보하며 ‘20년 집권’을 언급했던 ‘문빠’의 민주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만 생각한 ‘문빠’, 조국 장관만 바라본 ‘조빠’ 정치에 다수 국민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 ‘윤빠’ ‘명빠’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국민이 팬덤 정치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팬덤의 폐쇄성, 상대 악마화, 언어폭력 때문이다. 팬덤 정치의 극단화는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敵)’이라는 포퓰리즘의 이분법과 맞닿아 있다. 이런 극단화 정치가 정당 내부까지 스며들었고 정당이 팬덤 정치에 편승하는 행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앞으로 민주당은 비판을 포용하는 민주 정당이 될 것인가, 팬덤의 응징에 편승하는 독재 정당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 처할 것이다.

한국 정당 위기 상황은 국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개인과 팬덤을 위한 정당이 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팬덤이나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열린 정치, 통합 정치가 정당 위기 극복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