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 민생 지원 법안을 둘러싸고 원내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이 보이콧에 들어가면서다. 대통령은 곧바로 사임서를 반려했지만 정국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는 이날 “그동안 연립정부를 지탱한 국가적 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드라기 총리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으로 코로나19 사태 등에 무난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건의 도화선이 된 것은 오성운동의 투표 불참이다. 오성운동은 이날 260억유로 규모의 민생 지원 법안과 연계된 상원 내각 신임 투표를 보이콧했다. 법안은 찬성 172표, 반대 39표로 가결됐지만, 드라기 총리는 연립정부를 더는 지탱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주세페 콘테 전 총리가 이끄는 오성운동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물론 인플레이션의 타격을 받는 가계와 기업 지원책을 두고 드라기 총리와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드라기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콘테 전 총리는 군비 경쟁을 일으킨다며 반대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사임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드라기 총리에게 정국 위기 상황을 의회에 설명하고 뜻을 모을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총리 교체나 조기 총선 실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가을 총선을 치른 적이 없다”고 했다. 드라기 총리는 오는 20일 상·하원에 출석해 정국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9월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다음해 예산안은 9~10월에 확정되기 때문에 가을 총선이 실시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