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중동을 방문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국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가 취임 후 1년여만에 처음으로 중동 순방에 나선 배경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계속되면서다. 그동안 줄곧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언론인 피살 사건'을 비난해온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왕세자와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고공행진하고 있는 에너지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증산 동참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최근 휘발유값이 갤런당 5달러 이상으로 폭등하는 등 사상 최악의 물가상승률(6월 인플레이션 9.1%)로 인해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배경이기도 하다."사우디 원유생산량, 이미 한계치"14일 종가 기준으로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아 배럴당 95.78달러로 다소간 내려앉긴 했지만, 에너지 위기에 대한 전망은 계속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가스 등애 대한 금수 조치 도입을 검토하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미션 임파서블(달성 불가능한 임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의 원유 수급에 관한 전략이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국제 유가를 낮추겠다는 투트랙 구상을 펼치고 있지만, 두 가지 계획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자리에서 유럽 등에 원유를 더 많이 공급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동안 인권 문제를 이유로 외교 무대에서 사우디를 외면해온 바이든 행정부의 뒤늦은 구애가 빈 살만 왕세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데니스 로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사우디 입장에선 '나를 차버린 연인(미국)이 왜 이제와서 매달리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빗댔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이미 일평균 1100만 배럴 수준으로 늘어난 상태다. 전 세계 생산량의 10% 이상에 해당한다. FT에 따르면 여기서 사우디가 100만 배럴 가량 더 늘리면 사우디의 공식 생산능력을 모두 소진하게 된다. JP모간의 한 애널리스트는 "원유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들로선 다른 곳에서 손실이 날 경우를 상쇄하기 위해 공급 완충장치(여유 생산용량)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우디가 추가 증산에 나서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총 여유 생산용량이 위험한 수준으로 줄어들어 타이트한 원유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産 가격상한제도 효과 의문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에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을 상한하는 제재에도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제 유가를 진정시키려는 목적에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을 주도하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싼값으로 유지해 러시아 정부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미 주요7개국(G7) 정상이 상한제에 합의했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5~16일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참가국들에게 이를 적극 설득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서도 에너지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일하는 일부 에너지 전문가조차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오히려 에너지 수출량을 대폭 줄이고 이를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게끔 자극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중국과 인도, 터키 등 러시아에 우호적인 일부 국가들이 가격 상한제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시장 왜곡을 불러일으킬 게 뻔하다"며 "만약 (경기침체 우려에 따라) 국제 유가가 계속적인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러시아를 제재하는 처벌효과도 사라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목표는 국제 유가를 안정화하고 싶은건가, 아니면 러시아 정부의 재정을 약화시키고 싶은건가"라고 반문하며 미국 원유 정책의 모순점을 꼬집었다. 에너지 데이터 분석업체 엔베루스의 한 임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미션은 불가능해보인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