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낮춰야 만나는 희귀 야생화…천상의 화원을 걷다

입력 2022-07-14 16:34
수정 2022-07-15 01:46
강원 태백의 금대봉~대덕산 야생화 트레킹 코스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야생화 명소다. 봄·여름에 걸쳐 범꼬리풀, 일월비비추, 산꿩의다리 등 이름부터 재미난 야생화 600여 종이 지천으로 널린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야생화 트레킹을 즐기려면 정선군 고한읍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의 두문동재에서 출발하는 게 정석이다. 이어 금대봉(1418m)을 지나 분주령, 대덕산(1307m)을 거쳐 검룡소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약 9.4㎞ 거리에서 누구나 자연이 만들어 놓은 화원을 감상할 수 있다. 푸른 잎이 우거진 숲길을 걷다 평전(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에 올라서는 ‘걷는 재미’가 있는 코스다. 여름꽃이 수풀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오르는 초여름 오후에 이 길을 걸었다. 소리 없는 생존 경쟁두문동재의 ‘두문(杜門)’은 ‘문을 닫아 둔다’는 뜻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태백으로 내려온 고려 충신들이 인근 산간마을에 은거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두문동재의 또 다른 이름은 ‘불바래기’다. 화전민들이 산비탈에 놓은 불이 옮겨붙는 모습을 내려봤던 곳이라 이런 이름으로도 불렸다. 화전민들은 1968년 ‘화전정리법’이 공포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탄광촌으로 흘러 들어가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민둥산으로 남았던 옛 화전민 터는 1970년대 조림사업을 통해 일본잎갈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으로 재생됐다.

두문동재 초입에서 태백시의 시화(市花)인 함박꽃이 반겼다. 함박꽃은 하늘을 바라보고 개화하는 일반적인 꽃들과 달리 옆으로 꽃을 피운다. 흰색 꽃잎에 꽃밥이 붉은 모습이 주변의 녹음과 대비돼 특히 눈에 띈다. 조금 더 걸으니 호랑이 눈썹을 닮은 호랑버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물가에서 잘 자란다는 버드나뭇과 식물이지만 해발 1000m대 능선에서도 꼿꼿한 자태를 뽐냈다. 동해에서 불어온 습한 바람이 산봉우리에 걸려 습윤한 공기를 형성해준 덕분이다.

천상의 화원이라곤 하지만 발에 치일 정도로 꽃들이 만개한 건 아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작은 꽃도 많다. 미나리아재비만큼은 옅은 노란색의 광택 덕분에 멀리서 보면 땅 위에 떨어진 금반지처럼 반짝이며 눈에 잘 띈다. 번식을 도와주는 벌레를 더 많이 끌어모으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는데 사람 눈길을 끌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자연의 색이다.

금대봉 가는 길에선 웨딩 부케로 쓰이는 노루오줌, 검은 꽃봉오리가 요강을 닮았다는 요강나물, 사람 또는 차가 다니는 길가에서도 끈질기게 자란다고 해서 ‘차전자(車前子)’로도 불리는 질경이 등이 소리 없는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작은 키에도 햇볕을 한 뼘이라도 더 받으려고 꽃잎을 치켜세운다. 야생화 생태의 마지막 보루금대봉 인근 수풀에서 둥글게 말린 모양이 복주머니를 닮은 복주머니난을 만난 건 뜻밖의 행운이었다. 복주머니난은 전국에 1000여 포기만 남았을 만큼 희귀한 식물로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도 지정됐다. 이번에 발견한 개체는 탐방로를 벗어난 곳에서 자생하고 있었다. 보랏빛의 영롱한 자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데 그쳤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줌인 기능으로 꽃봉오리를 자세히 살피며 아쉬움을 달랬다.

대덕산 정상에 오르자 탁 트인 평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대에선 고도가 가장 높아 세상을 발아래 놓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발아래를 살펴보다 주황색 꽃잎이 달린 날개하늘나리를 발견했다. 비바람이 자주 몰아치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인 만큼 꽃잎이 얇은 게 특징이다. 약 5m 떨어진 산비탈에서 또 다른 날개하늘나리 개체를 찾아냈다. 이 꽃은 한반도에 자생하는 11개 종류의 나리 가운데 유일하게 보호종(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됐다. 이렇듯 금대봉~대덕산 일대는 희귀한 야생화가 자생하는 한반도 생태계의 최후 보루 중 하나로 꼽힌다. 식물학자와 사진작가도 즐겨 찾을 만큼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하루 탐방객 300명만 받아요하산 코스인 검룡소 길은 대체로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검룡소는 한강의 최장(514㎞) 발원지로 금대봉 기슭의 빗물이 석회 암반 아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고 한다. 하루 용출량은 2000~3000t에 달한다. 이 물이 북한강에 합류해 황해로 흘러간다.

금대봉을 지나 분주령까지 이르면 대덕산 정상을 거치지 않고 검룡소로 바로 하산할 수 있다. 남은 체력과 일몰 시각 등을 고려해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대덕산에 오르면 ‘고랭지’의 바람을 맞으며 태백산국립공원 일대를 조망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기에 한 번쯤 오를 것을 추천한다.

금대봉~대덕산 야생화 트레킹 코스는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관광보존 지역으로 하루 탐방 인원은 300명으로 제한된다. 1주일 전 국립공원 홈페이지 예약시스템을 통해 예약해야 탐방할 수 있다. 두문동초소와 검룡소초소에 상주하는 국립공원 소속 숲해설가의 숲 해설도 신청할 수 있다. 야생화에 대한 정보와 지명에 얽힌 유래담 등을 생생하게 전해 들으며 트레킹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태백=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