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축복으로 만들어줄 자문사 사용 설명서[김태엽의 PEF썰전]

입력 2022-07-13 15:53
수정 2022-07-15 12:12
이 기사는 07월 13일 15:5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어제 본의 아니게 오전을 땡땡이치고, 사무실에 있다가 퇴근하면서 오랜만에 울어보았다. 펑펑. 신호 대기 중에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은 채로 말 그대로 꺼이꺼이 울었다. 황당하게 울면서도, 언제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는데 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결혼 초기에 가수 이적, 윤상, 유희열 씨가 페루 마추픽추를 오르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나도 이제 아저씨네, 내 인생 끝났네" 하며 주루룩 울었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한번 터진 울음보는 맘대로 멈추질 않아서, 길가에 세워놓고 좀 더 울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 엄마 치매 판정을 받았을 때도, 우리 아빠 두 번째 암수술을 했을 때도 눈물이 잘 안났던 내가, 딸이 다치고 수술을 하고 마취가 깨서 내가 퇴근하고 있는 집에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맥이 탁 풀리듯 울음보가 터지는 걸 스스로 참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울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추적대던 비는 그쳤고, 뿌옇게 보이는 눈을 부비며, 그래도 정신줄을 붙잡고 집까지 무사히 왔다.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엄마지만, 그 옆에 꼽사리로 아빠도 있지 않은가?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

내 눈 앞에서 아이가 부상을 당하고, 울음과 함께 피를 쏟는 걸 보면서,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 수많은 시나리오들과 next step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냐, 응급실로 가야하나 아님 전문병원으로 가야하나, 레지던트한테라도 봉합 수술을 맡겨야 하나, 어느 성형외과 교수님 혹은 선생님들에게 연락드려야 하나, 어느 병원 응급실로 가면 덜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님 내일 아침에 차라리 경험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하나, 그 병원 원장님은 내일 아침 진료를 하실까. 초등학교 동창부터 은사님, 장인어른, 심지어 아이들 초등학교 아버지회 선배까지, 두뇌와 핸드폰 그리고 본능을 총 동원해서 주말 밤 염치 불구하고 조언과 도움을 요청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급박한 시점에서도 비교적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고 다음날 아침, 무사히 수술을 시작했다. 하나님한테 원망도 해보고, 조르기도 하고, 맹새도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정작 내가 내 힘으로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인계와 천계를 넘나들며 이틀만에 소화하기 힘든 걱정들과 판단들이지만, 결정하고 기도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이런 일들은 경영을 하면서도 종종 겪는 경험이다. 물론 안 겪고 무사히 은퇴까지 가면 좋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니 우리는 이런 역경을 겪으며 한꺼풀 더 단단해진다.

여기서 오늘 나눌 중요한 화두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 힘으로 해결이 안되는 일들을 "남의 힘을 빌어" 대처하는 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문사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 이를 통해 우리가 자식처럼 이뻐하는 우리의 기업들을 쑥쑥 키우는 법.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깊고 깊은 부부… 아니 자문사의 세계

투자 일을 하다보면 당연한 일인데, 내가 절대 모르거나 알아도 어설프게 아는 영역에 투자할 기회를 맞게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잘 알고 있는 산업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공장 증설이나 신제품 출시, 신규 유통 채널 진출, R&D 등 다양한 토픽들을 접하게 마련이다. 제일 이상적인 상황은(물론 현실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0% 이하로 떨어지겠지만) 이런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행도 척척하는 경영진들이 내부에 다 있으면서 '내 마음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다 알아 먹고 해달라는 대로 척척 해 주는 것일 게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나의 현실은 훨씬 척박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새로운 도전 요소들이 생길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자문사를 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모르는 건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자문사들이 있고, 우리는 언제 어떤 회사를, 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김대표~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 (중략) … 여하튼, 지금 L사를 쓰고 있는데 담당 변호사님이 애정이 없으셔. 실수도 잦으신거 같고…. 우리 CFO가 일일이 다시 다 넣구 있어…(어쩌구)… 그래서 말인데, 김대표는 누구랑 주로 일한다구? (그래서 전화번호 좀 얼른 내놔봐봐~)"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 아침 나의 첫 전화 통화 내용이다. 이처럼 적지 않은 창업주 혹은 중소 중견 기업 오너분들, 심지어는 대기업의 최상위 경영층 분들이 몰래 살짝 부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좋은 변호사", "좋은 세무사", "좋은 컨설턴트"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다. 다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컨설팅 회사들을 알고 있지만 정작 많은 기업들이 이들을 우리 투자회사들처럼 '정기적으로' 혹은 '필수적으로' 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른바 뜨내기 손님처럼 취급을 받는다. 인수합병, IPO, 매각 등 다양한 M&A 기법을 가치 창출을 위해 사용하거나, 이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기업의 가치를 방어(예를 들면 세무조사나 공정거래 리스크 대응 등)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는 기본이 되어 가고 있다.

자, 서두가 길었다. 사례를 들어보자.

자문사와 일하는 원칙들

나이 지긋한 업계 베테랑 두 친구가 의기투합하여 창업한 A사는 작지만 단단한 미디어 섹터의 숨은 강자였다. 음악 쪽에 투자해서 재미를 본 필자는 음악 다음에는 뭘까 해서 미디어 섹터 중 영화, 게임, 드라마, 기획, 제작, 특수효과 등 관련 섹터를 탈탈 털어서 뒤지던 중이었고, 마침 작은 사옥을 지어서 옮겨가던 A회사는 잘 키우면 3년 쯤 뒤 투자할 만한 회사가 될 수 있는 '될성싶은 떡나무'였다.

그러나 역시 내 눈에 보배면 남의 눈에도 보배인 게 당연한지라, 수많은 투자사들, 상장사들, 그리고 돈많은 오너분들이 이 회사에 접근했고, 두 창업 동지는 오랜 기간 상의 끝에 대주주 지분은 매각하고 경영진으로서 지위는 몇 년간 보장 받는 구조로 딜을 하면서, 꿩먹고 알먹는 형태로 엑시트를 하셨고, 자연스레 필자의 관심 선상에서 야금야금 멀어져갔다.

종종 연락하면서 안부만 묻던 게 몇 년 되었나, 어느날 밤, 심각한 목소리로 급박한 상담 요청이 왔다. "김 대표, 아무래도 계약서를 잘못 쓴 것 같아. 음악 쪽으로 좀 넓혀보려고 하는데 이사회에서 단칼에 자르더라구. 우리 둘 다 이사회에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지?"

1) 싼게 비지떡

졸린 눈을 비비면서 들어본 이야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들으면 알 만한 로펌을 상당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고용해서 만든 그 주식매매 계약서는 이른바 '템플릿'대로 작성한 표준 계약서 수준의 내용이었다. 잘못된 건 아니지만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경영은 좀 하고 싶고, 기존 사업은 사업대로 키우면서 동업자들이 각각 하고 싶은 신규사업은 새로운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투자해서 좀 들어가고 싶었던" 복잡 다단한 내용들이 섬세하게 반영되지 못한, 너무 슴슴하고 평이한 계약서였고, 결국 경영권 지분만 딱 잘라 매각한 기존 창업자들은 지금은 과거의 매도자이자 소액주주이면서 임기가 끝나가는 기존 경영진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억이 흐물흐물 났다. 주요한 협상은 다 직접 했고, 서류 작업만 하면 되니까 자문사 비용을 최대한 아껴서 했다고. 직접 회계며 재무 공부까지 하면서 가성비 좋게 딜을 마무리했다고 즐거워하셨던 모습이. 이렇게 손발 걷고 직접 배워가면서 하시던 모습을 너무너무 멋있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M&A는 그렇게 녹록한 종목이 아니다. 결국 느낌적인 느낌은 대형 로펌의 주니어 변호사가 회사의 템플릿대로 주어진 조건을 문서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었고, 당연히 우리 같은 투자회사에서 쓰는 비용의 10분의 1 가격으로 가볍게 마무리 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미 주식 매매계약은 체결된 지 수 년이 흘렀고, 두 창업자들의 임기도 끝나갔다. 다음 주총 때 자연스레 교체될 것이 뻔히 보였다. 주주간 계약을 통한 경영권 방어 혹은 경영권 보장은 개념만 있을 뿐 강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계약서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고, 회사 정관도 주주간 계약에 그나마 사알짝 언급 되어 있는 개념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이미 표준 정관상, 그리고 상법상 임기가 끝나가는 소액주주이자 대표이사의 권리 그 이상은 무엇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른바 정도를 통해서는 별별 경험을 다 했던 필자도 이미 손 쓰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했다. 나는 법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며 변호사보다는 친한 자문사를 소개해드렸고, 두 분은 비교적 평화롭게 남은 지분을 정리했다. 마음을 차분히 정리한 후, 창업자 중 한 분은 다시 미디어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본인 지분을 투자하면서 전문경영인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투자 계약서와 임원 위촉 계약서를 꼼꼼하게 검토한 다음에.

필자도 사모펀드를 운영하기 전에 전략컨설팅이라는 다소 정체가 불분명하고, 맡겨만 주시면 무엇이든 해드리는 '을병정'이자 자문사 생활을 오랜기간 했지만, 이런 서비스 업종에서 불문율 처럼 이어오는 진리가 싼게 비지떡이요, 뜨내기 손님은 호구라는 점이다. 무한대로 깎으면 깍는대로 리소스를 적게 투입하거나, 상대적으로 주니어들을 넣어서 원가는 맞추면 그만이고, 게다가 뜨내기 손님이면 AS의 개념은 희박하다. 서비스 산업이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가치이기에, 소탐대실하지 마시고 독자 여러분은 재대로 된 팀에서 재대로 된 서비스를 제 돈을 내고 받으시기를 추천드린다. 물론 본인이 그 서비스 섹터에서 (법률이건, 세무이건, 회계이건, 마케팅이건, IT이건, 전략 컨설팅이건, 오퍼레이션 컨설팅이건) 전문가라고 자처할 수 있다면, 본인이 몸으로 일부 때운다는 전제 하에서 싼 팀을 데리고 꿀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말리진 않겠다. 그럼 바가지의 기준은 뭘까? 글쎄 정가는 없지만, 무슨 딜을 하던 이런 저런 자문료가 거래 비용 전체의 1~2% 정도는 쓰셔야 한다고 본다. 3%도 뭐 딜이 좀 작다면 괜찮고, 그렇다고 4%는 좀 비싸다. 대충 감이 오시나?

자자, 그럼 이름있는 자문사들을 골라서 적당히 바가지를 쓰고 단골 손님 코스프레를 하면 자문을 잘 받을 수 있는가? 음, 그럼 무슨 일이 생기냐면 바로 A급 호구님이 되신다. 물론 자문 내용도 산으로 들로 갈 확률이 높다. 자, 그럼 호구 예방 접종을 원하시는 독자 여러분들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2) 질문이 정확해야 답이 정확하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믿고 맡기는" 것이다. 언제 봤다고 생판 남한테 귀하디 귀한 내 자식, 아니 내 회사의 미래를 믿고 맡기나? 믿고 맡기는 감정의 이면에는 나는 잘 모르겠으니깐 일단 자문사의 명성과 브랜드 뒤에 숨어 면피해보자는 마음이 숨어있다. 물론 필자한테 믿고 맡겨주시면 알싸하게 처리해드리겠지만, 이 또한 내 기준에서의 깔끔한 처리와, 막상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의 깔끔한 결론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럼 비싼 돈을 내고 쓸 수 밖에 없는 자문사들을 120% 아니 200% 활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힌트는 소제목에 있다. 바로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회사가 직면한 과제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가설을 세우고 해결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이른바 질문을 뽑는 것. 질문만 잘 뽑으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으로 보면 된다. 근데, 알다시피 질문을 잘 하려면 현재 겪고 있는 회사 내 문제의 근간을 파악하거나, 혹은 가고자하는 미래의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하는데, 이 역시 최소한의 경험이 없으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어떤 질문들을 던져야 하나? 대충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예를 들어 보자.

- 성장 = 매출의 드라이버
o Price (P): 단가는 유지/상승 할 수 있나?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로 가격을 올릴 수 있나? 시장에서 대체제는 있는가? 경쟁사의 마진 구조로 볼 때 같이 가격을 올릴 것인가 아님 거꾸로 내려서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갈 것인가?
o Quantity (Q): 시장은 크고 있나? 초과 수요는 있는가? 신제품/신규 서비스에 대한 시장 규모는 어떤가? 수요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이 수요에 접근 가능한 채널이 우리에게 있는가? Top-down으로 봤을 때 목표로 하는 시장 점유율을 역산하여 계산했을 때 현실적인 목표인가?

- 마진율 = 비용의 드라이버
o COGS (제조원가): 주요 원재료 가격의 추이는 어떠한가? 원재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가? 변동비와 고정비를 고려했을 때 BEP 포인트는 얼마이고, 언제 달성 가능한가? 기존 사업에 신규 사업이 더해졌을 때 Scale로 인한 원가 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일 것인가? 경쟁사 대비 원가 구조는 우위/열위에 있는가? 생산 단가 혹은 생산성 개선의 여지는 있는가? 생산 라인상 병목은 어디인가? 추가 외주 혹은 내재화를 통한 마진 개선의 여지는 어디인가?
o SG&A (판관비): 신규 사업이 최소 규모를 이루기까지 필요한 기간은 얼마이고 이 기간동안 투자해야하는 판관비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기존 영업/마케팅 채널을 활용할 때 판관비율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가? 영업 채널 혹은 제품 특성에 따라 증가/감소하는 판관비 항목들은 무엇이 있는가? 영업의 내재화/외주화를 통한 마진 개선 가능성이 있는가?

자문사들을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나의 조직, 나의 정보력으로는 해결 혹은 분석이 안되는 부분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중요도 순으로 나열해서 급하고 중요하면서도 분석이 가능한 (분석 자체가 안되는 질문들이 많다 - 예를 들어, 메타버스의 미래는 무엇인가? 뭐 이런 질문은 그냥 공상과학 영화 수준에서 끝난다) 질문들을 먼저 답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특히특히특히 (세번 썼다!) 중요한 점은, <i>(i) 단기적으로, (ii) 수치화/계량화 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지라는 것</i>이다. 계량화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가 혹은 10년 뒤 20년 뒤 미래를 물어봤다가 주는 대답이 내 입맛에 안맞거나, 확실한지 진짠지 의심이 갈 때 괜한 돈지랄을 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되고, 자문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게 된다. 게다가 더 최악의 시나리오는, 처음에 대답해야할 질문들을 던저주지 않고 먼저 맡겼다가 자문단은 자문단 대로 자가발전을 해서 뭐든지 만들어오는데, 읽다보면 결국 내가 궁금한게 아닌, 영 다른 질문을 열심히 (내돈을 써서) 공부해온 결과도 종종 나타난다. 쓸 데 없는 곳에 돈을 쓴 것이다. 이러니 결국 싼게 비지떡을 찾게 되고, 우리는 우문우답의 개미지옥으로 다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3) 평판 (reputation) 관리를 할 것 = 뜨내기 손님 벗어나기

필자가 벌써 십 수년 전 전략 컨설팅업계에서 노가다를 열심히 뛸 무렵이었다. 다양한 대기업들과 외국계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두면서 몇 년을 밤새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그런 와중에도 또 짬짬이 신규 고객사를 개발하거나 간간히 오시는 손님들의 RFP(Request for Proposal)에 대응하기 위해 제안서를 작성하는 팀에 끌려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컨설팅 혹은 투자은행/투자자문업의 특징일 수 있지만, 대략 제안서에 컨설턴트들이 혹은 뱅커들이 하고 싶은 핵심 질문과 그 질문들에 대하여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설적 대답들을 정리하고, 실제로 발주를 해 주면 어떤 일정으로 어떤 질문들을 검증해보겠다는 일정을 제안하게 된다. 업계 안 비밀인데, 사실 전체 일의 큰 틀을 잡는다는 측면에서 제안서만 꼼꼼하게 들여다봐도 대략 질문에 대한 미래의 그림 혹은 해답의 큰 틀이 보이게 된다.

2000년대 고속 성장을 하고 있었던 X그룹은, 요런 점을 얄밉게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당시 X그룹은 컨설팅 업계에서 독보적인 기피 대상 1순위였다! 항상 계열사 여기저기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 컨설팅 업계 1~5위 정도에게 RFP를 내고 꼭 두 세 군데도 아니고 서너군데 업체들한테 발표까지 시킨다. 뭐 여기까진 그럴수도 있다 싶은데, 문제는 이 X그룹이 제안서 발표까지 잘 듣고는 갑자기 잠수를 탄다는 것이다. 그간 받은 제안서 묶음과 발표 내용들을 기반으로 입을 싹 닦고 내부 인력으로 얄밉게 이 프로젝트를 자체 진행시켜버리거나, 이정도 경험은 아직 없는, 훨씬 싼 자문사 팀들을 꾸려서 제안서들을 다 보여주고는 이래저래 해달라고 하면서 반에 반값 프로젝트를 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싼게 비지떡이고, 호구도 밟으면 꿈틀한다. 결국 X그룹이 요청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자문업계는, 에이스들은 빠진, B급으로만 대응하는 꼼수 현상이 벌어졌고, X그룹의 최고경영진들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 그룹이 추진하는 인수합병이나 IPO는 맥이 한풀 빠진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다. 더불어 X그룹의 다양한 상장 계열사들의 전반적인 주가 역시 시장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는 경쟁 Z그룹 대비 늘 15-20% 정도 할인되어 거래되는, 이른바 2등 주식으로 유지되는 부작용과 함께.

반대로 M&A 시장에서는 확실히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상대방이라는 명성이 쌓이면 뜻밖의 기회들이 온다. 기왕 같은 가격이라면 매각을 맡은 자문사들은 평소 신뢰할 수 있고 코드가 맞는 잠재 매도인에게 살짝 먼저 인수 기회를 주고, 또 중요한 조건들을 협상할 때 양측 변호사들이 궁합이 맞으면 각각의 클라이언트, 즉 매수자와 매도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템들을 솔직히 공유하고, 지리멸렬할 수 있는 협상을 생산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다. 이렇게 깔끔한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는 팀이라면, 혹은 회사라면,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좋은 기회들이 제발로 뚜벅뚜벅 찾아오고, 우리의 귀염둥이 회사들은 남들보다 더 빨리 무럭무럭 클 수 있다.

자, 그럼 이름 좋은 자문사들에서 실력있는 팀들로 자문단을 구성하고, 윈윈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인수건 구조조정이건 추진을 시작하면서, 자문을 통해 내가 성장을 위해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미리 고민해서 깔끔하게 정의하고, 이를 우선 순위화해서 전달하고 진행하면서, 우리의 명성을 차근차근 쌓는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실행"이다.

4) 실행 없는 전략은 시간낭비/돈낭비

필자가 10여년 전에 Y그룹의 A계열사에 2대 주주로 투자했을 때였다. 지금보다 좀 더 순진했던 필자는, 정석대로 인수 전에 산업을 분석하고, capex사이클과 우리가 투자하는 자금을 활요한 신규 증설이 이루어 졌을 때의 재무 임팩트 및 예산을 미리 짜고, 성장이 둔화되고 있던 기존 제품에 추가하여 새로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 있는지 탈탈 털어내는 비전 블루프린팅 까지 깔끔히 끝내 놓았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딜을 담당하던 담당 임원들과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던 나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우리의 (그리고 우리가 고용한 자문단들 - 회계법인, 컨설턴트 그리고 투자은행들의) 시각으로 작성한 실사보고서들을 공유하면서 밝은 미래에 대한 상상과 계획을 나누었다.

근데 나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미래는 흘러갔으니, 투자가 완료된 지 3개월도 안돼서 같이 딜을 했던 담당임원 형님은 다른 계열사 임원으로 발탁 승진이 되어 떠났고, 한술 더 떠서 6개월도 안돼서 투자했던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그룹 인사 발령 사이클을 맞이하여 낼름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나의 밝디밝은 미래의 청사진이 잔뜩 들어가 있었던 투자 후 성장 전략 제안서는 기존 경영진들과 함께 훨훨 떠나갔고, 정작 실제로 투자자들이 희망하던 신규 투자들은 주주간 계약 상에는 전혀 언급이 없었기에 (실제로 이런 전략 하나하나를 계약서에 담는 거 자체가 불가능이다) 결국 탁상공론을 거창하게 만들어 놓고는 책상의 먼지처럼 사라진 것이다.

결국 A회사는 우려했던 것처럼 비실비실하다가 성장 동력을 잃고 말았으며, 이후 수 차례 경영진 교체를 통한 턴어라운드를 모색하다가 우리의 주도로 경영권 자체를 매각해서 새로운 주주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사히 고리 이자 정도 수준의 수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하여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으나, 정작 회사를 매각하면서 우리가 이것 저것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들을 새로운 똘똘이 주주사는 열심히 모아모아 공부하고 고민해서 이 전략들을 실제로 이루어내었다. 내 눈물 모아 만들어진 이 A회사는 결국 매각 후 2년 만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참 웃픈 나의 상처 중 하나이겠다.

이런 저런 쓴 경험을 한 이후, 나는 투자 전 실사를 할 때 전략을 세우고, 투자 직후 그 전략을 반드시 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추가로 발주하고, 3년 정도 지나면 자문단들을 다시 불러서 재검증의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전략을 자근자근 씹어 먹고 갈아 먹고 실행해본다. 이렇게 쓴 돈은 좀 뻥을 보태서 10원도 안아까웠다. 지난 16년간!

자 그럼 이제 슬슬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이제 독자들이 사랑하는 비법 전수의 시간이다. 자문사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활용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비용을 아낄 수 있을까?

자문사 200% 활용하는 팁

A) 전문가를 찾는 방법: 실제로 해 본 팀 vs. Reputation/명성

- 우리가 갖고 있는 복잡다단한 질문들에 각각 전문가가 다 있다. 그 전문가들을 찾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 예를 들어 컨설팅을 한다고 치면, 그 토픽이 전략인지 operation인지 먼저 결정하자. 전략이라고 친다면 난이도가 상중하 중 어느 정도인지, 국내만 봐도 되는지 해외 경쟁사/시장도 봐야하는지 정하고 이른바 Big 3에게 맡길지, 좀 더 작은 회사들에게 맡겨도 될지 결정하면 된다.
- 로컬 컨설팅 팀을 써도 된다고 판단되면 산업에 맞는 팀을 찾으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소비재/리테일이면 T모사가, IT 쪽이면 A모사가 잘한다. 오퍼레이션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면 또다른 A모사나 L모사를 쓰면 좋고, 오퍼레이션과 전략을 동시에 하고 싶다면 N모사를 쓰면 좋다. 테크쪽이면 P모사도 괜찮고, 전통 제조업쪽이면 M모사 출신들이 나와서 만든 다양한 회사들, 특히 E사를 추천한다. PPL이 없으니 실명은 공개 못하는데, 입이 근질근질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인스타그램 디엠 주심 바로 연락처 공개가겠다.
- 비슷비슷한 팀들이 제안을 한다면 실제로 가장 유사한 토픽을 해본 팀이 장땡이다. 경험만큼 훌륭한 선생님은 없다. 어설프게 명성이 좋으면 여기저기 불려다니게 되고 그럼 나한테 주는 시간은 적어진다.
- 이 모든 일들을 시작하기 전에 G어쩌구 T어쩌구 등등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해주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여기서 익명의 전문가들을 잡담하듯 인터뷰하면서 아이디어를 먼저 얻어보자. 그럼 심지어 자문사들 중에서도 누가 해봤는지, 누가 잘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꿀팁이다.

B) 자문사 활용 순서: 진단 (20)→전략수립 (40)→실행 (30)→AS/점검 (10)→영업 (0)

- 자문사를 활용할 때, 그게 인수합병이건, 구조조정이건,IPO건 시작 전에 항상 1-2주 정도 진단 단계를 넣으시는 걸 추천한다.
- 진단을 하다보면 정작 성장 전략을 추진하려했는데 구조조정이 더 중요하다든지, 비용을 줄이려고 했는데 가격을 올려야한다든지, 우리가 해야하는 질문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 특히 제일 좋은 건, 진단 단계는 통상 전체 비용의 20~25% 선에서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초반에 돈을 좀 써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접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 정도가 아니고 판을 더 키워야겠다 싶으면 그에 맞는 자문단을 확장해서 꾸릴 수 있다.
- 회계 선진화 프로젝트이건, ERP/클라우드 컨버젼이건, SNOP 비용절감 프로젝트이건, 전략 프로젝트이건, 조직 체계 개선 프로젝트이건, 반드시 실행 단계를 별도로 넣으시길 '강추'한다. 전략까지 비싼 회사를 써서 좀 아까우시면 실행단은 팀을 확 줄이든지, 아님 좀 더 비용이 덜 들어가는 팀을 쓰셔도 괜찮다. 이러면서 새로운 자문사 pool도 키워볼 수 있다.
- 그리고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건, 2-3년이 지나면 반드시 AS를 한번 더 받아 보는 걸 권한다. 이 AS가 진단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3일짜리 주요 경영진 인터뷰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이렇게 AS 후 follow-up 프로젝트나 추가 개선 프로젝트로 이어진다면, 혹은 bolt-on 인수로 이어진다면, 여러분은 드디어 자문사를 활용한 기업가치 개선의 전문가 1단계에 진입하시게 된다.

C) 2P 전술: Package로 주되, Phase를 나눠라

- 결국 자문단을 화려하게 꾸미고 이를 빡빡하게 관리하면 큰 사고는 면할 수 있다. 특히 세무쪽과 법무쪽 자문에는 돈을 아끼지 마시라고 항상 조언하는데(후진 자문을 받았을 때 그 후폭풍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나마 비용을 좀 줄이고 효율을 높이려면 같은 회사의 다른 두 세팀을 고용해서 package로 발주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계법인 big 4를 꼭 쓰고 싶다면 회계와 세무 실사를 같이 준다든지, 법무법인을 ace팀으로 꾸리고 싶으면 세무도 같이 맡기면서 family rate로 달라고 좀 조르면 된다.
- 그리고 또다른 꼼수 중 하나는 한 프로젝트를 여러 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발주해보는 것이다. 통상 우리같은 투자회사는 "산업 공부 → 투자 대상 기업 공부 → 실사 → 협상 → 계약"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른 두세 단계로 나누어서 예를 들면 top line까지만 뒤져보고 시장 포텐셜이 너무 작든지, 경쟁사 대비 성장이 너무 처지면 과감하게 접는다든지, 회계 실사부터 해보고 숫자가 진짜배기면 세무실사나 법무실사를 시작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 만약 M&A 실사를 한다고 한다면, 그 어떤 모든 실사를 시작하기 전에 reputation risk 혹은 거버넌스 실사를 먼저 하시길 추천한다. 물론 평판 리스크에 좀 더 둔감한 혹은 더 과감한 인수자의 경우 이를 생략할 수 있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소탐대실하지 마시길 권한다.

D) 결국 내가 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뼈 때리는 조언을 드리자면, 결국 자문사는 남이다. 내가 해야한다. 자문사를 통해서 여러분이 하셔야 하는 일들은, (i) 내가 그 업무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삼고, (ii) 좋은 자문단들과 관계를 맺어서 내가 아쉬울 때, 나에게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 내편이 되어 줄 사람을 미리 만들어 두고, (iii) 장기적으로 나와 궁합이 너무 잘 맞아서 우리 회사로, 내 파트너로 같이 일해줄 사람을 미리 찜해둘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 이런 것들을 고려해보면 자문단들을 너무 을로, 병으로, 정으로 대하시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이 순간 우리를 위해서 과로에 시달리는 자문단들도 누구의 부모이고, 소중한 자식이자, 둘도 없는 아내 혹은 남편이다. 내 사람처럼 소중하게 대하면 정말 내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사랑을 담아 대하자.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내 일을" 직접 하자.

이 세상에는 알량한 내 두손 두발로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이 때 우리 회사, 우리 조직, 당장 내 이웃에 그 수많은 도전을 해결하거나 최소한 판단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일수록, 아니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전부터 주변에 전문가들을 잘 알아두고, 그들이 무엇에 열정을 갖고, 뭐를 잘 할 수 있는지, 어떤 경험을 쌓고 있는지 알아두어야 한다. 이런 전문가 집단들을 빵빵하게 쌓아두면서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결정들이 옳고 그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밀려올 수 있는 후회는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각자가 믿는)하나님께 달려가서 마음의 위안과 평화, 그리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이런 고난들이야말로 우리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위장된, 진정한 축복이 될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