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습당해 위독하다는 속보가 전해진 지난 8일 오전 11시30분께 도쿄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1.5% 이상 오르던 닛케이225지수는 급격히 상승세가 꺾이며 강보합세로 거래를 마쳤다.
반면 달러당 136엔대에서 움직이던 엔화 가치는 135.30엔까지 올랐다. 우에노 야스나리 미즈호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베 전 총리는 엔저(低)와 주가 상승을 이끈 인물”이라며 “(그의 사망으로) 아베노믹스가 끝날 것을 예상한 금융시장이 엔고(高)와 주가 하락으로 움직였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아베 전 총리 사망에 대한 시장의 민감한 반응을 일본 금융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베가 일본 시장에서 갖는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직후부터 일본은행과 정책 협정을 맺고 금융 및 재정정책에 강력하게 개입했다. 대규모 금융완화와 적극적인 재정확장 정책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의 시작이었다.
아베 전 총리 재임 기간 닛케이225지수는 10,395에서 23,656으로 올랐다. 230% 상승률은 역대 총리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실업률은 4.3%에서 2.2%로 떨어졌다. 아베노믹스가 20년 장기 침체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후임인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아베 전 총리의 금융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현재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금융완화·재정확장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56%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취임 직전인 2013년 3월 말 13%였던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은 지난달 말 50%를 넘었다. 2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엔화 가치는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구로다 총재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착실하게 계속한다”는 견해를 반복하고 있다. 국가 부채를 걱정할 필요 없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아베 전 총리와 같은 입장이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은 내년 4월 임기가 끝나는 구로다 총재의 후임 인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에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대규모 금융완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원이 많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정부의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건전재정파다. 기시다 총리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금융완화 정책을 일부 수정하자는 일본은행 총재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일본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이 수정되면 엔화 약세가 멈추고 주식시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