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늘어나는 거액 횡령…양형기준 높이고 자율통제 강화해야

입력 2022-07-10 17:02
수정 2022-07-11 08:05
기업 내 거액 횡령 사고가 잇따르며 가뜩이나 위축된 경제 심리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KB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농협에서, 이달 들어선 현대제철 메리츠운용에서 줄줄이 횡령 사고가 터졌다. 하나같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굵직한 회사들에다 공기업·공공기관도 다수 포함돼 답답함이 커진다.

올 상반기에 확인된 거액 횡령 사건만 벌써 15건이라니 ‘자고 나면 터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고 내용도 비상식적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연초 오스템임플란트에선 상장사 역대 최대 규모이자 자본금보다 큰 2215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터졌다. 철저한 자금관리가 생명인 대형 시중은행에서 10년간 거액의 횡령이 이뤄진 사실이 발각돼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에선 회삿돈을 빼돌린 영업 직원 3명이 무더기로 적발돼 한국 기업의 내부통제 부실을 여실히 입증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권에서 사건·사고가 빈발하는 게 걱정을 더한다. 은행원이 횡령 자금으로 선물에 투자해 300억원을 날렸고, 농협 직원이 빼돌린 돈을 가상자산에 투자해 잃은 사례도 적발됐다. 우리·신한은행에서는 총 2조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송금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증시 낙폭이 두드러진 올 들어서야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도 불안을 증폭시킨다. 증시 활황기에 들키지 않은 불법 행위는 적발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우선 내부통제 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외부감사법 시행으로 2019년부터 내부 회계관리 제도가 강화됐음에도 내부통제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최고경영자가 내부통제 관련 인프라를 단순 지출이 아니라 사고 예방을 위한 필수 투자로 인식하는 문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급증하는 화이트칼라 횡령 범죄에 대한 법원의 강력한 처벌도 요구된다. 사고 규모는 급속히 커졌지만 양형 시 참작하는 횡령액 기준은 여전히 300억원이 최대이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 때가 많다. 그나마 횡령액 변제 시는 대부분 집행유예의 관대한 형량이 부과되는 탓에 반복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횡령을 중대범죄로 보고 배상명령과 함께 벌금형을 추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우는 양형 기준 개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