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투자손실금까지 은행권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시중은행 직원 A씨가 서울회생법원에서 주식이나 코인으로 발생한 투자 손실금을 회생변제금에서 탕감해준다는 내용을 보고 한 말이다. 최근 코인·주식 투자 실패로 인해 2030 회생 신청자가 늘어나면서 법원이 자체 기준을 내놓자 대다수 개인회생 채권자인 은행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A씨는 “공정한 게 아니다”고도 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1일부터 투자 손실금은 회생변제금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준칙을 적용한 이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투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높은 수익을 얻는 행위로, 자기 책임의 원칙이 중요한데 이를 무력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 탕감 준칙이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각종 커뮤니티에선 “회생 안 하면 바보”라는 투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법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회생절차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라는 것이다. 회생신청자의 재산이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을 때만 회생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파산보다 회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빌린 돈을 갚게 하는 게 채권자에게도 이득이라는 것이 회생법원의 설명이다. 투자에서 실패하면 회생을 신청하면 된다는 인식을 가지기엔 회생 절차도 깐깐하긴 하다. 회생신청자는 변제금을 갚는 3년간은 매월 법정 최저생계비(1인 가구 기준 약 116만원)로만 생활해야 한다. 여기에는 주거비, 식비, 의료비, 교육비, 통신비, 사회보험료 등이 전부 포함돼 있다. 조유나 양 일가족 사건과 같이 투자 실패로 인한 2030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국가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선의로 만든 준칙이 디테일 부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은닉 재산을 둔 ‘가짜 회생신청자’를 어디까지 걸러낼 장치가 있느냐다. 특히 제도권에서 벗어난 코인 자산을 찾아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서울회생법원이 마련한 암호화폐 가이드라인은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에 은닉한 자산을 조회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담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법원이 준칙 발표 전에 왜 금융권 등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은행권의 손실은 은행 고객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위험투자를 하지 않는 2030 고객들일 수도 있다. 안전투자자들이 위험투자자의 손실을 메워주는 격이라면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공감의 준칙’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