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둥귁에 달아···마침내 제뜨들 시러 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모두 108자로 이뤄진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의 한 대목이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노라’라는 뜻이다. 세조 5년인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본은 우리말 역사를 살펴보는 데 보고다. 짧은 이 대목에만도 모음조화, 연음표기, 의미변화, 구개음화 등 우리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법 요소가 여럿 나온다.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로 보통명사그중에서도 ‘말싸미(말씀이)’와 ‘노미(놈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연음표기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변화다. 연음표기는 미뤄두고 여기서는 의미변화에 대해 살펴보자. ‘말씀’은 남의 말을 높이거나 자기 말을 낮출 때 쓴다. ‘놈’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비속어라 함부로 쓰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높일 때는 물론 높이는 뜻이 없을 때도 ‘말씀’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놈’ 역시 평범한 사람 정도로 해석돼 지금보다 넓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어 본래의 의미보다 그 뜻의 사용 범위가 좁아졌다. 이른바 ‘의미축소’다.
‘경제효과 무한대, 영부인이 바빠져야 한다’ ‘영부인이 신은 것, 입은 것 모두 완판’ ‘영부인의 조건’…. 근래 새삼 논란이 되고 있는 ‘영부인’ 용법도 의미변화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의미축소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영부인(令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로 멀쩡하게 쓰던 보통명사였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시절, 권위주의로 인해 아무나 쓰지 못하게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자칫 그 말을 오해해 마치 대통령(大統領) 부인(夫人), 즉 영부인(領夫人, 실제로 이런 말은 없다)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마저 있었다. 사실은 좋은 우리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말은 우여곡절은 겪었어도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일상에서 쓰이는, 살아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활발하게 쓰이지는 않는다. 현실적 용법은 ‘대통령 부인’을 이르는 말일상에서 ‘영부인’이 활발히 쓰이지 않는 배경에는 이 말이 다소 어려운 한자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한자를 잘 모르고, 좀 무겁다 싶은 한자어는 기피하는 현실 속에서 영부인, 영식, 영애, 영손 같은 단어가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말의 세력도 약해져간다.
영부인이 특정칭으로 쓰이는 것처럼, 일반명사이던 말이 고유명사 또는 그에 준하는 특칭으로 바뀌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다. 대개는 언어발전 역사로 보면 고유명사가 그 쓰임새가 활발해지면서 보통명사로 확대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잘 아는 노트북을 비롯해 버버리코트, 샤프펜슬, 크레파스, 호치키스, 지프, 포스트잇, 스카치테이프 등 수많은 단어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 특정 상표명에서 보통명사화한 말들이다.
그런 점에서 ‘영부인’같이 보통명사가 특정인을 뜻하는 준(準)고유명사로 바뀌는 사례는 흔치 않다.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에서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 정도로 한정돼 쓰이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는 과거 왜곡됐던 영부인의 쓰임새에 한자어 기피 현실이 더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부인이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긴 하지만, 보통은 그중에서 사회적 신분이 높은 이의 아내를 가리킬 때 쓰인다는 점도 이 단어가 좁게 쓰이는 배경이다.
우리말에 퍼스트레이디(First Lady)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대통령 부인’으로 충분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에 해당하는 독립된 단어가 필요한 것이다. ‘영부인’의 잘못된 쓰임새가 오래전 지적됐지만 여전히 왜곡된 채 쓰이는 현실이 그 증거다. 아쉬운 대로 ‘영부인’이나마 가져다 쓰는 게 아닐까? 이 말의 의미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또는 단순히 잘못 쓰는 말로 머물지 지켜볼 일이다.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축소를 이룰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것은 오로지 언중이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