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 2019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강행하며 총리직에 오른 지 3년 만이다. 하지만 새 당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총리직을 수행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존슨 총리는 7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집권 보수당 대표 자리를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그는 “보수당에는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고, 새 리더가 총리가 돼야 한다는 당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새 지도자 선출을 위한 절차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하고 일정은 다음주에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임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과도 총리직을 맡아 계속 국정을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은 여름에 경선을 치르고 10월 초 당대회 전에 새 총리를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존슨 총리의 퇴진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 보수당 원내부총무인 크리스토퍼 핀처 의원이 클럽에서 남성 두 명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존슨 총리가 핀처 의원의 과거 성 비위 사실을 알면서도 임명을 강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당초 존슨 총리는 이런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이후 말을 바꿔 실수였다고 사과했다.
존슨 총리는 전날 하원 총리 질의 시간에 사퇴를 요구하는 의원들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은 이상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버텼다. 자진 사퇴를 권고한 자신의 측근인 마이클 고브 주택부 장관을 해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을 필두로 장·차관급 50여 명이 줄줄이 사의를 밝히자 내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대 영국 정치에서 볼 수 없던 규모의 사임”이라고 평가했다.
존슨 총리는 2019년 7월 취임했다. 브렉시트,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영국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측근들과 파티를 했다는 ‘파티 게이트’로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6일 의회 불신임 투표에서 구사일생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찬성 211표, 반대 148표로 총리직을 간신히 지켰다.
하지만 최근 보수당도 존슨 총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위원회는 ‘신임 투표 뒤 총리직을 12개월간 유지하도록 보장한 원칙’까지 바꾸겠다며 사퇴를 종용했다. 결국 7일 그는 보수당 평의원 모임인 1922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레이디 위원장을 만나 사의를 밝혔다. 보수당 전당 대회가 있는 10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보수당 대표 경선은 다음주부터 시작된다. 후임 당대표로는 앞선 대표 경선에서 존슨 총리와 경쟁했던 제러미 헌트, 사지드 자비드를 비롯해 마이클 고브, 페니 모돈트, 리시 수낙, 리즈 트러스, 벤 월리스 등 전·현직 각료들이 거론된다.
다만 존슨 총리가 당분간 총리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영국에선 총리가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과도 총리직을 맡아왔다. 하지만 존슨 총리가 보수당 내 불신임으로 사임하는 만큼 총리직에서도 바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보수당 의원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존슨의 행동은 너무 무모하고 변덕스럽다”며 “가을까지 나라를 이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