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소리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집에만 있으니까 예민해지는 거라고. 종일 누워 놀지만 말고 나가서 운동을 좀 해봐. 이제 몸도 괜찮아졌잖아. 그러면 저런 소리 안 듣고 살 것 같은데?"
정소현의 소설 <가해자들>의 한 대목입니다.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들의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화자들이 등장해 정신적으로 파괴되어가는 섬뜩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고 적었습니다. '칼부림'까지 벌어지는 층간소음 갈등
층간소음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겪는 '현실' 입니다. 우리나라 10가구 중 8가구(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가 아파트·다세대와 같은 공동주택에 거주하기 때문입니다. '국민 스트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재택 근무와 자가격리가 급증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탓 입니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가 접수한 층간소음 민원은 지난해 기준 4만6596건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2만6257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집콕'이 불러온 층간소음의 시대 입니다.
혹자는 층간소음을 이웃끼리 배려하고 참으면 될 일 아니냐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층간소음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해자들은 심각한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고통이 극에 달하면 잔혹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층간소음과 관련해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27건에 달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기 부천시 연립주택에서 70대 노부부에게 둔기를 휘둘러 남편을 숨지게 하고 부인은 중태에 빠트린 30대 남성이 체포됐습니다. 5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에서 30대 남성이 아랫집 부부를 흉기로 찌르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죠. 지난 1일에도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20대 남성이 위층에 사는 80대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소음이 분노로, 분노가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입니다.
"법정까지 가야할 판"...뾰족수 없는 층간소음 대책
"지금까지 층간소음을 개인의 문제로 접근해왔지만 이러한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22일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현재 층간소음 피해자가 문제 해결을 하려면 직접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중재를 요청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간 중재가 되지 않으면 소음 측정을 진행하는데요. 이마저도 소음으로 인정되기 쉽지 않습니다. 주간의 경우 43데시벨, 야간은 38데시벨이 넘어야 하는데요. 층간소음의 주요 원인인 '발망치(걷거나 뛰는 소리)'가 권고 기준을 넘기는 사례는 전체의 1%도 안 된다고 합니다. 설령 층간소음이 인정되더라도 법적 강제성은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최종 해결책은 민사소송이 될 수 밖에 없고 증거자료는 당사자가 직접 수집해야 합니다. 경실련이 언급한 '개인적 접근'은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마저 "갈등이 심해지기 전에 대화로 푸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할 만큼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 입니다.
정부는 제도적인 해결책을 추진 중 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층간 소음과 같이 오랜 기간 지속된 생활 문제를 해결할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장 다음달부터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시행됩니다. 층간소음 검사 장소가 실험실이 아니라 준공된 아파트라는 게 기존과 달라진 점입니다. 이에 따라 8월 이후 입주자모집공고가 나는 공동주택에 대해 새로운 검사 기준이 적용됩니다. 만약 층간소음 차단 성능이 기준에 미달하면 검사기관은 사업자에게 보완 시공이나 손해배상 등을 권고하게 됩니다.
건설사들 "층간소음 줄이자" 앞다퉈 기술개발
기업들은 층간소음 저감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자체 개발한 기술로 층간소음 '극한 실험'을 하며 아파트 품질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하고 있죠. 삼성물산은 지난 5월 업계 최초로 층간소음 전문 연구시설인 '래미안 고요안 랩'을 열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층간소음 차단 성능 1등급 기술'을 개발해 국가공인시험기관의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주가는 선방 중 입니다. 8일 0.44% 내린 11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는데요. 연초보다 10% 넘게 오르며 약세장 속에서 '역주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DL이앤씨 역시 '디사일런트2(D-Silent 2)'라는 자체 기술로 층간소음 차단 성능 1등급을 획득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 층간소음이 감지되면 월패드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당 가구 입주민에게 알려주는 '층간소음 알리미'도 도입했죠. 주가는 다소 아쉽습니다. 올해 들어 35% 하락했는데요. 저조한 실적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증권가에서는 올 3분기부터 영업이익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층간소음 차단 1등급을 따냈습니다. 고성능 완충재에 특화된 소재를 추가로 입혀 충격 진동수를 제어한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이 걷거나 뛸 때 발생하는 진동과 충격소음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현대건설의 설명입니다. 주가는 상승 기류에 올라탄 모습입니다. 지난 3월 5만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지난달 말 3만5400원까지 떨어졌는데요. 다시 반등을 시작하며 8일 3만9550원에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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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