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동학개미에서 '도박 개미'로

입력 2022-07-05 17:34
수정 2022-07-06 16:44
2년 전 이맘때 강호의 최고수는 동학개미였다. 그들의 ‘미친 화력’에 코스피지수는 2020년 말 전인미답의 ‘3000 고지’를 밟았다. 1년 전 이즈음엔 주인공이 코인개미로 교체됐다. 코인 군단의 진격에 비트코인은 로켓처럼 치솟아 8000만원을 뚫었다.

동학개미와 코인개미는 닮은 점도 많다. 동학개미의 ‘탈외세’와 코인개미의 ‘탈중앙’이라는 웅장한 슬로건부터 그렇다. MZ로 불리는 2030세대가 주축인 점도 닮았다. 둘이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집단으로 불리는 이유다.

너무 닮아서 쓰라린 것도 있다. 바로 외화내빈의 투자성적표다. 동학개미는 ‘증시 독립 선언’의 주역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수익률은 바닥권이다. 어떻게 계산해봐도 외국인과 기관에 당한 것으로 나온다. 코인개미는 더 참담하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 들어서만 60% 폭락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개인의 1~5월 해외파생상품 거래가 5000조원을 넘었다. 한국 작년 GDP의 2.4배에 달하는 규모다. 투자 대상도 그나마 익숙한 미국 주가지수 선물·옵션을 넘어 미 국채, 원유, 금, 구리 등으로 다양하다니 더욱 놀랍다.

해외파생투자의 주역도 MZ세대다. 2030세대가 해외파생투자로 몰려가는 것은 낮은 증거금과 높은 레버리지 때문이다. 1000만원의 기본예탁금이 필요한 국내 파생시장과 달리 위탁금이 100만원 미만이어도 투자가 가능하다. 투자 레버리지도 평균 20~30배로 엄청나다.

문제는 성공한 투자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제로섬의 냉정한 시장에서 정보가 부족하고 언어도 딸리는 개인이 이기는 건 당연히 바늘구멍일 수밖에 없다. 그런 탓에 지난 한 해 국내 개인은 4000억원의 해외파생투자 손실을 냈다.

동학개미, 코인개미에 이어 도박 개미로 ‘흑화’해 가는 2030의 신세가 처량하고 참혹하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익숙지 않은 해외파생상품에 5000조원의 천문학적 투자를 몰빵했을까. 벼락거지 면하려다 알거지로 추락하는 듯해 가슴이 아프다. 때마침 동학개미의 정신적 지주라던 존봉준(존 리)은 투자부정의혹에 휘말렸고, 김치코인의 상징이던 테라·루나 주조자 권도형 대표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우연이라기엔 참 서늘하고 기분 나쁜 절묘한 타이밍이다. ‘X버(무작정 버티기)’와 물타기로 이겨내기엔 글로벌 경제 환경이 너무 냉혹하다. 투자가 도박이 된다면 또 한 번의 파국이 기다릴 뿐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