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산다면 노후자금으로 2000만엔(약 2억원)을 스스로 모아야 한다.”
2019년 일본 금융청이 낸 보고서는 일본 사회를 흔들었다. 은퇴한 부부가 별다른 수입 없이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공적연금으로만 3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매달 5만엔의 적자가 난다는 것이다.
공적연금 부족분을 보완하려면 퇴직연금 등을 통해 추가로 노후자금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글로벌 증시가 급등한 2020년을 제외하면 연 0~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버블경제 붕괴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이 퇴직연금의 대부분을 원금보장형에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2014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을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 호주 등 서구 국가와 다르게 디폴트옵션에 원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하면서 수익률은 나아지지 않았다. 디폴트옵션 중 원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2020년 기준 75.5%에 달한다. 미국 등은 디폴트옵션 도입 기업에 원금 손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지만 일본은 없다는 점도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학교와 기업을 중심으로 금융교육이 확산하면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디폴트옵션 내 원금보장형 상품 선택 비중이 줄고 있고 2030세대를 중심으로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늘고 있다. 오오에 가요 확정거출연금교육협회 이사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퇴직연금 관련 교육을 하고 있는 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오는 12일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한다. 한국은 일본 사례를 참고해 디폴트옵션에 원금보장형 상품을 포함했다. 디폴트옵션 도입 기업에 대한 면책 조항도 없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에도 퇴직연금 수익률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도쿄=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