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생시장 누르자 해외서 초고위험 투자…보호장치는 '全無'

입력 2022-07-04 17:28
수정 2022-07-05 00:54
올 들어 국내외 증시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해외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초고위험 상품인 해외파생상품 투자에서 성공한 개인투자자는 극히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높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보호장치가 사실상 없는 실정이어서 금융당국의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십 배 레버리지 활용 가능파생상품은 주식, 주가지수, 채권, 원자재, 통화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선물·옵션이 대표적이다.

올해 1~5월 개인투자자 거래금액이 가장 많은 해외파생상품은 ‘E-mini 나스닥100’(1조3864억달러)이었다. 이 상품은 나스닥 시가총액 상위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한다. 이 밖에 ‘마이크로 E-mini 나스닥100’ ‘코스피200 야간 옵션’ ‘크루드오일 서부텍사스원유(WTI)’ ‘E-mini S&P500’ ‘금 선물’ 순으로 거래액이 많았다.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특성상 기초자산 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투자자 손익은 크게 널뛴다. 선물 투자의 손익은 ‘(포지션 청산 가격-매수 가격)×거래승수×계약 수’로 계산된다. 거래승수란 파생상품을 계약하는 거래 단위로, 상품마다 값이 다르다. 예를 들어 거래승수가 20달러인 ‘E-mini 나스닥100’을 12000.00포인트에 5계약 매수해 11900.00포인트에 팔았다면 지수는 100.00포인트 움직였지만 손실은 1만달러(-100×20×5)에 이른다.

대부분 증권사는 해외선물계좌에서 총 80% 이상 손실이 났을 경우 즉시 반대매매를 시행한다. 예를 들어 레버리지 비율이 30배인 상품에 투자한다면 기초자산 가격이 2.7%만 움직여도 강제 청산될 수 있다. 증권사들은 투자한 상품의 평가액이 유지증거금 이하로 내려간 뒤 일정 시간대(통상 다음 영업일 오전 12시)까지 투자자들이 추가 증거금을 입금하지 않아도 반대매매를 시행한다. “잠자고 일어났더니 투자금이 눈 녹듯 증발한다”는 투자자들의 비유가 나오는 이유다. 국내 상품에 비해 낮은 진입장벽2016년만 해도 개인투자자의 해외파생상품 거래금액(1952조원)은 국내파생상품(2650조원)을 크게 밑돌았다. 하지만 2018년 해외파생상품 거래금액(3625조원)이 국내(2887조원)를 처음 넘어선 뒤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2011~2014년 국내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된 이후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해외파생상품 시장으로 투자자가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파생상품은 사전교육과 모의거래가 의무화돼 있고 기본예탁금 1000만원이 필요하다. 기본예탁금은 최초 주문을 하기 위해 입금해야 하는 초기 예치금이다. 위탁증거금과 별도로 넣어야 한다.

반면 해외파생상품은 위탁증거금만 있다면 투자가 가능하다. 100만원 이하 소액 자산으로도 해외 선물에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자 위험은 해외파생상품이 국내 상품보다 높다. 국내 선물·옵션 상품의 레버리지 비율은 평균 5~15배 수준이지만 해외의 경우 20~30배에 달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파생상품은 상품 가격 변동 위험뿐만 아니라 환율 변동 위험에도 노출돼 있어 개인투자자의 위험 관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보호 장치 필요’ 목소리 커져업계와 당국 모두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같은 파생상품임에도 국내와 해외에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내와 같이 사전교육·모의거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증권사 해외파생팀 관계자는 “해외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고객 중에는 기본적인 지식 없이 유튜브 등을 보고 무턱대고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기본예탁금을 설정하는 등 투자 문턱을 높이는 방법도 거론된다. 다만 해외파생상품 시장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은 파생상품 거래를 따로 규제하지 않는다”며 “해외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하더라도 가상자산이나 불법 사설업체 등 제도권 외의 투자처로 위험자산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