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치솟는 경찰…기업들 영입 경쟁

입력 2022-07-04 17:36
수정 2022-07-12 15:19

경찰 몸값이 치솟고 있다. 최근 3년 새 ‘검경수사권 조정’ ‘중대재해처벌법’ 등 경찰 수사 권한이 강해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재계에선 ‘경찰관 모시기’ 경쟁에 불이 붙었다. 전통적으로 경찰관을 선호하는 보험회사뿐만 아니라 로펌, 건설회사 등 여러 분야 기업이 경찰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수사권 확대에 줄줄이 기업행고위 경찰관의 기업행이 올 들어 두드러진다. 4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최해영 전 경찰대학장은 이달부터 삼성전자 고문으로 일한다. 최 전 학장은 대전경찰청장, 경기남부경찰청장 등을 지냈고 경찰 조직 내 2인자인 치안정감에 오르기도 했다.

이상로 전 인천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은 지난해 12월 한국서부발전 상임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용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은 지난해 5월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으로 취업했다. 남택화 전 충북지방경찰청장(치안감)은 2020년 11월부터 도로교통공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외부 기업 이직 심사를 통과한 경찰청 소속 경위 이상 간부급 경찰관은 2020년과 지난해 각각 248명, 196명으로 집계됐다. 100여 명에 그쳤던 인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업에 경찰 네트워크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검경수사권 조정, 검수완박 등으로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독립 수사 주체로 인정받으면서 기업 생사에 큰 영향을 주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찰 수사 중요도도 높아졌다.

실제 경찰 수사권한이 확대된 시점과 취업 인원이 늘어난 시점이 맞물린다. 2020년 1월 국회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라고 불리는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과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 심사 통과 경찰관은 100명(2020년 1분기)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한 지난해 1분기에는 72명이 이직 심사를 받았고 취업 승인이 났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형사소송에서 법률 다툼을 하는 것보다 수사 단계에서 대응을 잘하는 게 더 큰 효율을 볼 수 있다”며 “수사 핵심 정보나 네트워크를 보유한 경찰관들이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로펌, 건설사 등 다양한 곳서 ‘영입戰’경찰 출신이 필요한 기업도 다양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보험사기조사부서(SIU)의 조사를 위해 보험사가 주로 경찰을 영입했지만 올해 들어 카카오, 두나무, 쿠팡, 이랜드파크, 법무법인 YK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경찰관을 영입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로펌이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해 경찰수사대응팀(SPID)을 설립하고 경찰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기획과장을 지낸 이재훈 전 강남경찰서장을 지난해 SPID 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수원남부경찰서 수사과 출신 안무현 변호사 등 3명을 스카우트해 경찰 출신 10여 명으로 구성한 경찰팀을 운영하고 있다.

로펌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경찰 출신 변호사의 몸값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수사 절차를 세세하게 파악해 조언할 수 있고 기존 인맥을 활용한 현재진행형 수사 정보를 확보할 수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3~4배가량의 임금을 제안받고 있다. 이직이 잦은 총경과 경정의 임금(2022년 10호봉 월지급액 기준)은 각각 418만6200원, 380만900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가장 민감한 건설사들도 경찰관 모시기에 적극적이다. 특히 ‘가성비’를 따지는 중소 건설사의 채용이 활발하다. 여러 법률 전문가로 사건을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수사 인맥을 가진 경찰 출신을 활용해 수사 과정에서 초기 대응을 재빠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경찰청 소속 경정 A씨는 건설사 건웅토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B경위는 4월 안전관리자 직책으로 광혁건설에 취업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하청관계가 복잡하고 사회적 책임도 신경 써야 하는 건설 대기업들은 수사 단계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며 “중소 건설사의 경우 수사 단계에서 대응 여지가 많아 경찰 출신 채용에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