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족쇄' 된 외환법…"금융사도 어디 어떻게 신고할지 몰라"

입력 2022-07-01 17:36
수정 2022-07-11 15:56
국내 거주자 A씨는 미국 유학 중인 자녀에게 해외여행 경비 명목으로 7개월간 세 차례 달러화를 송금했다. 이후 남은 유학 경비와 현지 은행에서의 대출을 더해 본인 명의로 100만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현지 체류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외국환은행에 신고를 누락해 외국환거래법(외환법) 위반으로 200만원의 과태료와 벌금을 부과받았다.

사업가 B씨는 동업자와 함께 중국에 현지법인을 공동으로 설립하기 위해 외국환은행장에게 현지 법인 지분 50%를 인수하겠다고 신고하고 계좌에 2만달러를 송금했다. 하지만 갑자기 동업자가 투자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지분을 100% 취득하게 됐다. 투자액은 바뀌지 않았다. 이후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있던 그는 얼마 뒤 지분율 변경에 따른 변경신고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런 사례가 많은 건 외국환거래법이 복잡해서다. 특히 23년간 17번의 법 개정과 35번의 시행령·규정 개정으로 ‘예외의 예외의 예외’까지 덕지덕지 붙으면서 법규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늬만 신고제’한국에서 외환 거래를 규율하는 법은 1961년 제정된 외국환관리법에서 시작됐다. 외국환관리법의 핵심은 ‘허가제’다. 개발도상국 시절 정부가 외환거래를 원칙적으로 통제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한 것이다. 이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거래 자유화 요구를 반영해 정부는 1999년 외국환관리법을 대체할 외국환거래법을 제정했다. 외환거래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규제하는 ‘신고제’가 외국환거래법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간 한국의 외환거래 제도는 ‘무늬만 신고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수십 번의 개정을 거치며 거래금액, 유형별로 수백 개의 세부 조항이 생겨났다. 예컨대 외화차입의 경우 영리법인이 1년간 누적 3000만달러 넘게 차입하면 기획재정부에, 3000만달러 이하는 외국환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개인이나 비영리법인은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기업이 해외투자를 할 때도 신고 기관이 제각각이다. 금융, 보험업체는 금융위원회에, 기타 금융기관은 금융감독원에, 일반 비금융 기업은 외국환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투자기관이 어딘지,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신고해야 할 기관이 다르고 사전 신고뿐 아니라 투자 내용이 바뀔 때도 유형에 따라 신고 형식이 다르다”며 “외환 거래를 주요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도 어떤 신고를 해야 하는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외환법 주관부서인 기재부 외환제도과에 들어온 질의는 490건으로 세제실 재산세제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종합부동산세 등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슈에 따라 질의 숫자가 오르내리는 세제 부서와 달리 외환제도과는 항상 1, 2위를 다툰다. 외환법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방증이다. ○수백 개에 달하는 ‘열거식 규제’정부는 규제 완화 차원에서 외국환거래법을 전면 손질하기로 했다. 내년까지 ‘거래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신(新)외환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재부가 마련 중인 신외환법의 핵심 변화 방향은 △‘예외의 예외’ 대폭 삭제를 통한 규제 단순화 △외국환 업무의 업권별 규제 완화 △누더기 법령의 정상화 △향후 가상자산의 지급 수단 인정 등 미래 수요를 감안한 법령 유연성 확보 등 네 가지다.

기재부는 기업들의 해외투자 시 초기 1년간 최소 5개가 넘는 신고·보고와 각종 변경 신고 등 서류 제출 의무를 대폭 축소할 계획이다. 수백 개에 달하는 열거식 규율도 정리하고, 신고 대상 기관도 단순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외환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고, 가상자산처럼 열거되지 않은 자산이 출현할 때마다 규제 사각지대가 생기는 문제도 원천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은행이 그간 독점해온 일반 환전, 송금 업무를 증권, 보험, 핀테크 등 다른 금융회사에 일부 허용하는 업권별 규제도 ‘동일 기능, 동일 규제’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영점에서 검토할 예정이다. 이슈가 생길 때마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외환거래규정을 건드리면서 생겨난 ‘예외의 예외’로 인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없어진 외환법의 기능을 되살리는 작업도 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