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중국과 손잡고 평화체제를 만든다는 환상

입력 2022-07-01 17:30
수정 2022-07-02 00:09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자신의 SNS를 통해 책을 한 권 추천했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가 쓴 《짱깨주의의 탄생》이다. 본문만 650쪽을 넘는 이 책은 문 전 대통령의 말마따나 제목이 도발적이고 내용도 논쟁적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급속히 자리잡고 있는 주류의 중국 인식을 ‘짱깨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미·중 충돌 시기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가 중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라고 규정했다.

짱깨주의란 중국과 중국인은 무조건 나쁘다며 함부로 말하고 멸시하는 중국 혐오다. 이 같은 중국 인식은 보수적인 언론과 정당 등 보수주의가 기획한 악의적 프레임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과연 그런가. 책을 읽다 보면 인식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말문이 막힐 정도다.

동북공정은 팽창정책과는 거리가 먼 중국의 수세적인 북한 붕괴 대비책인데, 보수 언론이 역사 전쟁으로 부추겼다고 한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의 핵심 기제인 데다 미·중 간 억지력 균형을 깨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감정적이지도, 과잉 대응도 아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른바 ‘사드 보복’이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적 대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짱깨주의에서 탈피해 보면 중국은 지역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어느 국가보다도 유용하다. (중략) 중국은 이미 우리에게 평화체제를 함께 열어 가자고 손 내밀고 있다.” 책을 읽노라면 평화를 지향하는 중국을 패권국가 미국이 괴롭히고 있으며, 한국은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듯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런 책을 추천하면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지난 5년을 보냈다고 하니 알면서도 기가 막힌다.

저서 《슬픈 중국 1·2》 등을 통해 중국 실상 알리기에 힘써온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역사학)는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중국몽은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공산당 일당독재의 논리이며, 주변국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구태의연한 패권주의”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정부가 벌인 대약진운동(1958~1962년)의 희생자가 3000만~4500만 명이다. 문화대혁명(1966~1976년) 기간에는 공식 발표 자료만으로도 173만 명가량이 죽고, 703만 명이 다치거나 회복 불능의 불구가 됐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경제성장을 이어왔지만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그대로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이자 《미성숙한 국가》를 쓴 작가 쉬즈위안(許知遠)은 중국의 현 상황을 폭압적 독재정권이 지배했던 1970년대 한국에 비유하면서 “중국이 아주 먼 미래에도 이성적이고 관용적인 현대국가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중국 지식인의 평가도 이런데, 우리 진보 진영의 중국관도 마오쩌둥 찬양 일변도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가 러시아를 ‘가장 직접적인 위협’으로, 중국을 ‘NATO의 이익, 안보, 가치에 도전하는 국가’로 규정했다. 국제질서와 안보 지형이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 진영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으로 재편되면서 신냉전체제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의 참가는 달라진 외교·안보 지형을 보여준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의 균형외교론은 벌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NATO 정상회담 참가에 대해 “대가를 치를 것”(환구시보)이라고 위협했다.

《짱깨주의의 탄생》 저자는 미국 중심의 수직적 일극체제가 중국의 부상으로 다극화하고 있는 지금이 신냉전적 대결에서 벗어나 평화체제로 이행할 기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이 그렇게 선한 이웃인가. 우리의 기억은 편치 않다. 6·25전쟁의 인해전술부터 사드 보복, 대통령 수행 기자에 대한 폭행, 한한령, 잦은 방공식별구역 침입까지….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대통령 어깨를 툭툭 친 건 또 어떤가. 북한의 가장 든든한 뒷배이자 대북 제재의 ‘뒷문’도 중국이다.

1992년 수교 이후 30년 동안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한국도 그 혜택을 누려왔지만 이젠 지나친 중국시장 의존이 고질적 리스크가 된 지도 오래다. 요소수 하나로 온 나라가 대란에 빠지기도 했다. 원료나 중간재 수입의 대중 의존도가 너무 높아 여차하면 언제, 어떤 칼을 들이밀지 모른다. 작은 굴욕을 용인하면 더 큰 굴욕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이 바뀐 만큼 우리의 대응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원칙과 규범에 따라 당당히 대처해야 한다. 평화체제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위력과 상호 존중이 지속되고 보장돼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체제는 동북아시아의 중화주의적 평화체제와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