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안 발표에 반발하며 사의를 밝혔다. 그러자 경찰 내부망엔 “아쉽다” “김빠진다” 등의 탄식이 쏟아졌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경찰 수장이 정부와 각을 세우고 과감하게 던진 사표가 이렇다 할 ‘임팩트’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장문의 표현 수위부터가 그랬다. “지난 역사 속에서, 경찰의 중립성 강화야말로 국민의 경찰로 나아가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등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단어들로 채워진 것이다.
사의 표명 뒤 조용히 휴가를 떠난 김 청장과 달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연이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국 설치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 장관은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지휘·견제할 조직이 없다”며 경찰국 신설을 8월 말로 못 박기도 했다. 경찰과 행안부의 기싸움에서 승부가 이미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치안 유지를 위한 행정조직인 경찰이 선출 권력인 대통령과 내각에 반기를 든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저항의 명분으로 내세운 ‘경찰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의 눈에는 ‘제 밥그릇 지키기’로 비친 게 현실이다. ‘국가경찰위원회의 차기 청장 거부권’ ‘경찰 직장협의회 단체 농성’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동력을 급속도로 상실한 만큼, 더 이상의 저항이 유효할지 의문이다.
경찰이 집중해야 할 것은 따로 있어 보인다. 스스로 개혁에 시동을 걸어 진정성을 보이는 길이다. 여론이 경찰의 진정성을 믿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경찰의 독립성’이라는 명분에 힘이 실리고 경찰의 투쟁은 지지를 받았을지 모른다. 경찰을 비판하는 쪽에선 “전 정권 시절 스스로 독립성을 포기했으면서 이제 와서 전 정권과 성향을 같이하는 인사들이 뭉쳐 정부에 저항한다”고 지적한다.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이 경찰 스스로가 원해온 개혁의 시작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오명을 쓴 정보 경찰의 권한을 각 부처로 넘기는 등 경찰의 정보 기능을 축소하는 방안도 이미 나와 있는 마당이다. 이제 1년을 맞이하는 자치경찰제의 실효성을 높여 국민 피부에 와닿게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현장에선 아직 과도기인 자치경찰들의 수사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다.
사의를 밝힌 날, 경찰청장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표정은 할 얘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 김 청장 개인의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청장이 누구든 그가 보다 당당하게 입장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건 앞으로 경찰이 어떤 개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