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9일 취임 4주년을 맞았다. LG는 '구광모 체제'에서 스마트폰과 태양광 등 만년 적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한 대신 배터리와 전장,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구 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 기반을 구축하며 총수 교체라는 그룹의 변수를 무리 없이 연착륙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제 위기가 본격화하는 올해가 구 회장의 본격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주요 그룹 총수들에 비해 다소 외연 확장이 더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스마트폰 철수…수익성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표현구 회장은 2018년 5월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전 회장에 이어 총수 자리에 오른 뒤 과감한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실용주의로 대변되는 신(新)리더십을 선보이며 변수 속에서도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구광모 체제'에서 LG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등 그룹 주요 7개 상장사 매출은 2019년 138조원에서 지난해 179조원으로 약 2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조6000억원에서 15조8000억원으로 244% 급증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LG그룹의 공정자산총액은 167조5000억원으로 구 회장 취임 첫 해인 2018년 123조1000억원보다 36.1% 뛰었다. 이 기간 계열사는 70개에서 73개로 3개 늘었지만 2019년 75개와 비교하면 2개 줄었다. 문어발식 확장을 자제하는 구 회장 특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엿보인다.
이 같은 성과는 구 회장 취임 일성과 같은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는 2019년 LG전자 연료전지 사업과 수처리 사업을 시작으로 LG디스플레이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LG유플러스 전자결제 사업 등에서 차례로 발을 뺐다. 2020년에는 LG화학 편광판 사업, 지난해와 올해에는 휴대폰·태양광 사업을 각각 매각·철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특히 철수 전 누적 영업 적자 5조원을 기록한 MC 사업부를 정리한 것은 수익성을 확 끌어올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미래 투자, 조직 문화 개선도 긍정적미래를 위한 투자도 과감히 집행했다. 구 회장 부임 후 두 달 만에 LG전자는 약 1조4000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제조사 ZKW를 인수했다. 이 선택은 4년이 지난 지금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차량전장·VS 사업본부), 이파워트레인(합작법인 LG마그나), 충전 인프라(스타트업 애플망고 인수), 전기차 배터리 5각 생산체계 구축(LG에너지솔루션-제너럴모터스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중심)'이라는 전기차 생태계 구축의 초석이 됐다.
LG는 향후 5년간 국내에만 106조원을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총 투자액 가운데 43조원은 배터리 및 소재, 차세대 디스플레이, AI 등 미래성장 분야에 투입한다.
조직 문화 개선도 구 회장의 스타일이 반영됐다. 그는 취임 직후 '유연한 조직문화'와 '고객 중심 소통 업무'를 거듭 강조했다. 전 직원 완전자율복장제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상황에 맞는 재택근무제 등 스타트업의 장점을 흡수한 것도 그다.
구 회장은 자신의 사내호칭을 '회장'이 아닌 '대표'라고 불러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어렵고 무거운 그룹 총수 이미지를 벗고 구성원들에게는 친근하게, 전문경영인들과는 동등한 위치에서 격 없이 소통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 전 LG그룹 회장은 평소 구 회장에게 "많이 만나고 잘 듣고 인재들이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직원들을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하라"며 겸손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올 하반기 실적 전망 안좋아…위기 극복 시험대다만 구 회장의 리더십은 올해가 본격적인 시험대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4년간 발판을 다진 만큼 이제는 성공 사례가 나올 때가 됐다는 것. LG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소비자들의 전자제품 구매력 감소 등은 큰 도전으로 꼽힌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계열사들의 2분기 전망도 비관적이다. LG전자는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 상승 여파로 가전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이미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전 수요가 급증했던 데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점도 향후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있다.
일부 증권사에선 2분기 LG전자 연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57%, 전년 대비 7% 쪼그라든 8148억원에 그칠 것으로 봤다. 단독 영업익 역시 전분기 대비 64%,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한 548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TV 시장 축소 전망으로 LG디스플레이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크게 떨어졌다. 증권가에선 부품 조달 차질과 전방 시장 수요 약세로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6.1%, 영업이익은 이번에 4147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LG유플러스 역시 통신시장 성장 정체, 과열된 가격 경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2%, 영업이익은 5.2% 줄어 3대 통신사 중 유일하게 감소세를 보였다.
LG화학 역시 올 2분기 실적이 1년 전보다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들이 예상한 LG화학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96% 증가한 12조3677억원, 영업이익은 59.05% 감소한 8762억원이다. '17년 연속 매출·영업이익 성장 신화'를 쓰며 LG그룹의 '효자' 계열사로 꼽혔던 LG생활건강도 상황이 좋지 않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2%, 영업이익은 무려 52.6%나 급감했다. 2분기 실적 역시 전년 대비 매출은 14%, 영업이익은 38%나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4대 그룹 총수로서 더욱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주요 그룹 총수들의 경영 행보가 두드러지는 만큼 구 회장 역시 대외적으로도 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