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을 폐기한 이후 개별 주(州)에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발맞춰 낙태를 금지·제한하는 법을 발효하도록 한 이른바 ‘트리거 조항’이 시행되자 낙태권 옹호단체들이 소송전으로 응수하고 있다.
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지방법원의 로빈 자루소 판사는 27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가 트리거 조항에 근거한 낙태금지법을 시행하는 것을 일시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사건을 본격적으로 심리하는 다음달 8일까지 법 시행이 한시적으로 중단된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후 개별 주 차원의 소송전이 계속되고 있다. 26일 플로리다주의 낙태 옹호단체는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주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냈다. 25일에는 애리조나주의 시민단체가 주법이 모든 낙태를 금지할 우려가 있다며 소송을 냈고, 유타주에서도 같은 날 트리거 조항을 문제 삼은 소송이 제기됐다. 오하이오주 역시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트리거 조항의 발효에 반대하는 소송이 예고돼 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주가 미리 만들어둔 낙태금지법을 현시점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표적인 예로 위스콘신주는 1849년 임산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위스콘신주 법무장관은 “해당 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민주당에서는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을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활용할 태세다. 여성의 기본권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켜 유권자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낙태권을 연방 차원에서 법률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 절차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조문화하거나 여성의 낙태 원정을 위한 이동권을 명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 통과까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안정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법안 통과가 어렵지 않지만, 상원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다. 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 규정을 무력화하기 위해선 공화당 의원 최소 10명이 입법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민주당은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뿐 아니라 상원에서도 다수당이 돼야 한다”며 유권자 공략에 나선 상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