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분양가 제도 운영 합리화 방안'을 두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일각에서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버금가는 규제 완화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분양가를 최대 4%가량 올릴 수 있도록 분양가 산정 때 가산비 항목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가 요원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급 확대를 위해 규제 합리화가 추진되면서 분양가 제도 개선 기대가 커졌습니다. 지난 21일 나온 대책에서는 택지비 건축비 가산비로 이뤄진 분양가 책정 방식에서 세입자 등 주거 이전비, 상가 세입자 영업손실 보상비, 총회 운영비 등을 분양가 산정 때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3월과 9월 정기 고시하는 기본형 건축비의 경우 조정 항목에 창호유리, 강화합판 마루 등을 포함하고, 품목의 상승률이 높으면 가격을 추가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년여간의 코로나19 사태 지속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글로벌 물류망이 차질을 빚고 철근 시멘트 등 건설 원자재가격이 급등했습니다. 건설사들은 건자재 값이 20%가량 상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개선한 건 재건축·재개발 조합의 일반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조합이 이익이 늘어나지 당장 건설사의 공사비가 대폭 증액되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건설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건설사는 돈을 많이 벌고 있다. 분양가를 통제하더라고 건설사 이익이 줄어드는 거지, 손실을 보는 건 아니다. 분양가에 맞춰 살길을 찾을 거다"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건설사를 사리만 취하는 토건족, 건설업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공사비 문제로 현장에서 아우성이라고 해도 정부는 뒷짐 지는 모습입니다. 건설사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기본형 건축비도 인상했으니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부도가 나거나 공사가 멈춘 현장이 어디 있냐는 반문입니다. 현장에서는 매일 공사비 문제로 살얼음판이라고 합니다. 정부의 인식과 괴리가 큽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국민의힘은 문 정부의 무리한 분양가상한제 도입으로 재건축에 속도가 나지 않아 공급이 막히는 부작용이 있다고 보고 분양가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분양가상한제 개편과 함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및 안전진단 규제 완화 등 이른바 '재건축 규제 완화 3종 세트'를 도입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완화 이야기는 쏙 들어갔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집값이 오르면 다른 경제 정책도 펴기 힘들기 때문에 국토부는 무조건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특명을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국토부 공무원도 지난 달 새 정부 출범 당시 이전 정부 때 편 규제책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했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고 규제 완화에 나서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잠재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는 규제를 건드리지 말자는 게 새 정책 가이드라인처럼 느껴집니다.
시장의 자율성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더 큰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가격 규제에 따른 공급난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사비 급등으로 조합과 시공사, 시행사와 시공사 간 마찰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잿값 폭등에 수도권 거래 시장과 지방 분양 시장 급랭 등 복합 불황으로 건설시장이 붕괴에 버금가는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