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어릴 때 꿈은 이공계 전문가 또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광주여상에 진학하면서 이 꿈은 접어야 했다. 그러다가 1985년 취업할 때 다른 학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원서 한 장이 그 꿈을 다시 꿈틀거리게 했다. 삼성반도체통신(1988년 삼성전자에 합병) 연구원 보조를 뽑는다는 것이었는데, 혼자만 지원했다. 그는 2020년 21대 총선(더불어민주당 광주 서을)에서 당선된 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의 반’자도 몰랐지만, 마음 한쪽엔 기술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사 초기 커피, 복사 심부름을 하던 양 의원이 반도체 전문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일본어였다. 당시 반도체 관련 자료는 대부분 일본어로 돼 있었는데 정작 연구원들은 일본어를 잘 몰라 책상 위에 던져놨다. 양 의원은 고교 때와 입사 후 일본어를 공부한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전문용어를 배워 일본어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글 번역 문장을 써놓았더니 연구원들의 대접이 달라졌다”며 “‘미스 양, 커피’ 이러다가 양향자 씨로 부르더라”고 회고했다. 다음 과정은 잘 알려진 대로다. 삼성전자 책임, 수석을 거쳐 임원(상무)에 오르는 단계마다 한계와 편견을 깨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는 정치권에도 잇단 ‘소신’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친정인 민주당이 그에게 무소속 몫으로 법사위에 들어가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찬성해달라고 한 요청을 거부했다. 지난해 보좌진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뒤 복당하려던 것도 철회했다. 민주당의 요청을 들어줬다면 복당은 물론 다음 공천도 따놓은 당상일 텐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금 ‘개딸’에 환호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슈퍼챗에 춤추는 유튜버 같다”고 비판한 것도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여당인 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을 수용했다.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는 “반도체는 경제이자 안보고 여야와 이념이 따로 없다”고 했는데, 옳은 말이다. 우리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가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진영 논리가 무슨 소용 있나. 그는 2년 전 “개인적 삶은 장례를 치렀다”며 “정치에서 한계를 깨겠다”고 한 다짐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4류 정치’ 진흙탕 속에서 양 의원이 돋보이는 이유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