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업계에 ‘비건 열풍’이 불고 있다. 화장품업체들은 잇달아 비건 제품을 출시하고, 비건 인증기관에는 인증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 동물을 보호하고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이른바 ‘미닝아웃(가치소비)’ 현상에 따라 비건의 영역이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급성장하는 비건 화장품
27일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비건 인증기관 한국비건인증원에서 인증한 비건 제품은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500여 개에 달한다. 1000개가량이 화장품이다.
또 다른 인증기관인 비건표준인증원은 2020년 하반기 인증 서비스를 개시한 이후 500여 개의 비건 화장품을 인증했다. 비건 인증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인증 제품은 전년 대비 두세 배에 달했다”며 “인증 신청이 식품에 국한되지 않고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품목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건 화장품은 통상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으며, 천연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화장품’으로 인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1억달러(약 19조5000억원)에서 2025년 208억달러(약 26조90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비건 브랜드 잇따라 출시
LG생활건강은 올해 첫 출시 브랜드를 비건으로 선택했다. 이달 초 선보인 비건 메이크업 브랜드 ‘프레시안’이다. 주원료뿐 아니라 부재료 역시 식물성을 적용했다.
사탕수수 유래 원료로 만든 바이오 상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퍼프 등을 적용하는 식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전 제품이 비건 인증을 받은 브랜드를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비건 열풍은 뷰티 시장에서도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비건 화장품 브랜드인 ‘이너프 프로젝트’에 이어 지난 4월에는 헤어제품 등이 포함된 비건 브랜드 ‘롱테이크’를 선보였다. 편백잎, 검정콩 등 식물 유래 성분뿐 아니라 목공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고목의 톱밥을 재가공한 향료를 사용한다.
올리브영은 비건 화장품 시장이 커지자 아예 2월부터 ‘비건 뷰티’ 카테고리를 만들어 마케팅하고 있다. ‘클리오 비건웨어’ ‘디어달리아’ ‘어뮤즈’ ‘엔트로피’ 등 10여 개 브랜드가 비건 뷰티로 선정됐다. 이달 10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올리브영에서 비건 뷰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2% 증가했다. 인증기관 관리·감독 ‘사각지대’화장품업체들은 한국비건인증원, 비건표준인증원, 비건소사이어티(영국비건협회), 이브비건(프랑스비건협회) 등 국내외 비건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받고 있다.
국내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화장품 표시·광고를 위한 인증·보증기관’으로 한국비건인증원을 지정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모두 같은 절차와 기준에 의해 해당 제품이 비건임을 인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비건에 대한 법적 정의와 명확한 인증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인증기관에서 제조시설에 실사를 오는 경우는 해외 기관 한 곳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서류제출로 진행된다”며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이 100% 비건이 아니라고 해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인증 비용이 소비자가격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비건 인증 비용은 제품마다 수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이 소요되고 주기적으로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비건 인증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 관계자는 “비건 인증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없다”며 “‘비건’을 표시한 사업자(기업)가 실증자료를 통해 입증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