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만원 미만 전기차 보조금 폐지
영국 정부가 지난 2011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온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올해 중단키로 최종 결정했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1년 빠른 조치이며 내년부터는 배터리 전기차(BEV) 보조금을 충전 인프라 확대에 사용키로 했다. 보조금을 통한 BEV 확대에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영국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소비자가 5,000만원 이하 전기차를 구매하면 최대 2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을 처음 지급한 시점부터 올해까지 사용한 세금만 2조원 이상이 투입됐고 덕분에 올해 1~5월 BEV 판매가 10만대에 달하는 등 누적 50만대 등록이 이루어졌다.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는 BEV 종류도 24종에 달할 정도로 많아졌다. 따라서 전기차 시장의 마중물 역할로서 보조금을 끝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보조금이 BEV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정책 폐지의 이유가 됐다. 보조금 자체를 줄여온 데다 일부 고가 차종은 보조금 없이도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등 내연기관에서 BEV로 바뀌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대신 영국 정부는 보조금을 충전 인프라의 빠른 확충에 집중 투입키로 했다. 택시, 배달용밴, 오토바이 등 비교적 주행거리가 많은 사업용 자동차의 BEV 전환이 적극 이뤄지는 탓이다.
이를 두고 영국 내 자동차기업들은 보조금 제외가 BEV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BEV 확대에 중요한 것은 등록대수가 아니라 촘촘한 충전 인프라에 있다고 봤다. 충전 편의성이 충족된다면 친환경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보조금 정도는 부담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 셈이다. 또한 그래야 제조사도 가격 낮추기에 적극 나설 것으로 확신했다. 나아가 운행거리가 많은 사업용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발생하는 충전 정체 현상도 해결 과제로 손꼽았다. 이제는 충전 인프라 확대가 보급보다 중요한 목표가 됐음을 인정한 형국이다.
그런데 비단 이 문제는 영국에만 한정된 사안은 아니다. 한국도 보조금을 통해 BEV 등록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사업용 전기차가 포함되자 충전 인프라 부족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실제 최근 전기차 이용자들의 불만은 주행거리가 아니라 충전 불편에 집중되고 있다. 사업용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충전기 이용 횟수와 시간이 가파르게 증가한 탓이다.
한편에선 여전히 BEV 구매 보조금을 두고서도 명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BEV 보조금 지급 명분이 BEV 자체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운행 과정의 '배출가스 제로(0)'에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BEV 구매 보조금 명분을 운행 상 배출가스 감축에서 찾지만 이 경우 이미 혜택을 받고 있다는 논리도 강하다. 수송용 에너지를 사용할 때 유류는 세금이 포함된 반면 전기는 세금이 없어서다. 다시 말해 운행 과정에서 에너지의 경제적 이점을 갖는 것 자체가 혜택에 해당된다는 목소리다. 반면 유류에 부과된 세금은 탄소 배출에 따른 일종의 징벌적 개념이어서 BEV의 구매 보조금 지급은 이동 수단 자체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팽팽하게 맞서 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공정이다. 공정의 시각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와 배터리 전기차를 비교할 때 전기차가 내연기관 대비 탄소 배출이 적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자동차의 생산 과정을 기준 삼는 전주기 관점(LCA, Life Cycle Assessment)을 적용하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래서 구매할 때 일단 보조금을 주며 운행 과정에선 탄소 배출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에너지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연기관이든 전기차든 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도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건설하는데 이때 유류에 부과된 교통에너지환경세, 정확히는 세 가지 항목 가운데 '교통' 부문의 세액이 투입된다. 그래서 BEV가 사용하는 전력에도 '교통세'는 부과되는 게 공정하다. 내연기관이든 BEV든 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탄소 배출과 무관한, 오로지 '이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