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권' 폐지에 바이든 "슬픈 날"…멕시코 원정낙태 문의 '급증'

입력 2022-06-25 15:17
수정 2022-07-25 00:01

미국 연방 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하면서 주(州)별로 낙태금지가 가능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긴급 대국민 연설을 열고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며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러나 이것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오는 11월 열릴 중간선거에서 낙태권 지지 후보를 선출해 입법 절차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미국에서 낙태를 헌법적 권리로 확립한 기념비적 결정으로 꼽힌다.

1969년 텍사스주의 미혼 여성 노마 맥코비(22)가 원치 않는 셋째 아이를 임신했으나 가난한 탓에 다른 주에 가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미국에선 오직 4개 주만이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했고, 제한적으로 허용한 주도 16개에 불과했으며 텍사스를 포함한 나머지 30개 주에서는 산모의 생명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1970년 3월 낙태 금지에 관한 텍사스주 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 사생활에 관한 권리에 위배된다며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해 헨리 웨이드 당시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두 사람의 성을 따 '로 대 웨이드'라 불리게 됐다.

대법관들은 1973년 1월 22일 7대 2로 로(맥코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임신 후 첫 3개월 동안에는 어떤 이유로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대신 이후 3개월간은 각 주가 산모 건강 보호 등을 위해 일부 규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49년 만에 뒤집힌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낙태 금지론자들은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했고, 일부 주(州)는 즉시 낙태 금지 조처를 단행했다.

반면 낙태 옹호론자는 미국의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비난하며 낙태권 보장을 위해 단호하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이 판례를 폐기하기로 하면서 주 경계는 물론 국경까지 넘는 원정 낙태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낙태를 돕는 멕시코 시민단체 '네세시토 아보르타르'('나는 낙태가 필요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에는 미국 여성들의 소셜미디어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낙태 금지를 주장하는 보수파들의 손을 들어준 미국 대법원을 강하게 규탄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국제사회도 낙태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찬반 논란을 벌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미 대법원 판결 이후 트위터에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며 "오늘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자유에 도전받은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시한다"고 썼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트위터에 "미국서 전해진 뉴스는 끔찍하다"며 "낙태권을 잃을 수 있는 수백만 명의 미국 여성에게 마음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큰 나라가 이 문제(낙태)에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은 전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서구사회가 생명에 대한 열정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인간의 생산성이라는 진지하고 시급한 문제에 대해 함께 숙고해보자는 강력한 초대"라며 판결을 환영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