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3200만원?…오바마·트럼프도 꼭 찾는다는 이곳은 [강영연의 뉴욕부동산 이야기]

입력 2022-06-25 18:00
수정 2022-06-25 18:06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남북전쟁 후 철도 등의 산업 발전으로 1880년 미국은 '황금시대'를 맞았습니다. 광활한 미국 영토를 횡단하는 철도, 산업의 기반이 된 석유 등 산업의 주요 분야에서는 '왕'이라 불리는 대부호들이 생겨났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불렀던 것도 이때였습니다. 반짝이는 금박 안에 감춰진 썩은 것들이 가득하다는 신랄한 비판이었습니다.

트웨인이 비판하긴 했지만, 이 시기 미국 경제가 대호황을 누린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센트럴 파크 사우스와 57번 스트리트에 '억만장자 거리(Billionaire's Row)'가 있다면 당시에는 5번 애비뉴에 '백만장자 거리(Millionaire’s Row)'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부자들은 모두 5번가에 집이나 건물을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철도왕'으로 불렸던 헨리 빌라드도 5번가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1881년 5번가에 빌라를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맥킴, 미드 앤 화이트 (McKim, Mead and White) 건축사무소에 빌라 설계를 의뢰합니다. 안뜰을 둘러싼 4채의 집과 51번가를 마주하는 2채의 추가 주택을 요구했습니다. 밖에서 보면 얼핏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독립된 6채의 건물이 연결된 구조입니다.



당시 부동산 기록과 안내서에 따르면 이 빌라는 사생활을 보호하는 동시에 부랑자의 진입을 막고, 조용한 은둔생활을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금방 깨지고 말았습니다. 빌라가 완공되는 사이 빌라드의 제국은 몰락했습니다. 1883년 말 빌라는 완공됐지만 빌라드는 이 아름다운 저택에서 몇 달밖에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다양한 주인들이 이 빌라를 소유했습니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많았고 1943년에는 여성 군인 클럽이 건물 중 하나를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1968년 랜드마크 보존위원회는 전체 부지를 랜드마크로 지정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 빌라는 5번가의 어떤 건물보다 더 과거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74년 빌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부동산 개발자인 해리 헴슬리가 55층짜리 호텔을 짓겠다며 이 건물을 사들인 것입니다. 랜드마크 보존위원회와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햄슬리는 이 건물 자리에 새로운 호텔을 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인테리어를 보존하는 가운데 건물 뒤쪽에 호텔을 지었습니다.



어렵사리 1981년 문을 연 팰리스 호텔은 단숨에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햄슬리는 호텔을 불과 10여년 운영하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파산 과정에서 호텔은 1993년 브루나이의 술탄에게 넘어갔습니다. 이후 호텔은 브루나이 국가 소유와 미국 부동산 펀드를 거쳐 2015년 한국의 롯데호텔이 매입하게 됐습니다. 롯데호텔은 팰리스 호텔을 8억500만달러, 당시 환율로 약 89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이름은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로 바꿨습니다. 팰리스 호텔이 가진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롯데를 알리기 위한 개명이었습니다.

롯데의 호텔 인수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토지권도 없는 호텔을 너무 비싸게 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뉴욕은 한국과 달리 토지권과 건물권이 분리돼있습니다. 토지권이 없는 건물주는 토지 주인에게 매년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이 호텔의 토지권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이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드가 성당에 기부한 건데요. 토지권에 대한 임대료는 맨 처음에는 1달러 정도로 상징적인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임대료는 급등했습니다. 임대료는 보통 수십 년 단위로 갱신되는데 한번 갱신될 때마다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입니다.

이 토지 임대료를 놓고 2000년 브루나이 정부와 성당 간의 소송이 뉴욕타임스 등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외신에 따르면 성당은 1979년부터 매년 100만달러의 임대료를 받고 있었는데, 맨해튼 부동산 가치를 고려할 때 900만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루나이 정부는 450만달러 이상은 못 내겠다고 했고요. 성당은 현재 토지 임대료를 얼마를 받고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지만 상당한 금액일 것이란 예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롯데가 이 호텔을 산 이유 역시 명확합니다. 전 세계로 호텔 사업을 확장하려는 롯데에 뉴욕에서 호텔을 운영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메리트이기 때문입니다. 미드타운에 있으면서 뉴욕 최초의 5성급 호텔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호텔을 매수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경영진의 의지도 확고했습니다. 호텔 인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대 뉴욕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한 신 회장이 가치를 알아본 것입니다. 롯데 관계자들에 따르면 글로벌 호텔 시장으로 확장을 계획하며 뉴욕팰리스호텔 인수를 제안했을 때 신 회장은 이미 호텔을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입니다. 하지만 뉴욕은 경제 수도이자 국제연합(UN)이 자리하고 있는 외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도 자주 찾습니다. 그럼 미국 대통령이 뉴욕에 오면 찾는 호텔은 어디일까요. 바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입니다. 미국 대통령뿐 아닙니다. 매년 9월 유엔 총회가 열릴 때 세계 정상급 인사들이 이 호텔에 묵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바로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롯데는 호텔을 인수한 후 고급화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는 총 87개의 스위트룸이 있는데, 모든 스위트룸에는 스웨덴 명품 침대 브랜드인 해스텐스의 침대가 들어가 있습니다. 해스텐스 스위트에 있는 침대 가격만 2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쥬얼리 디자이너와 협업해 만든 쥬얼리 스위트, 샴페인의 황제로 불리는 돔페리뇽과 함께 꾸민 샴페인 스위트 등 독특한 스위트룸도 만들었습니다.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 따르면 이런 특별한 스위트룸의 가격은 2만5000달러정도로 일반 스위트룸보다 1만달러(약 1300만 원) 정도 더 비싸지만 프러포즈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과도 내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은 2015년 인수 이후 매년 4% 이상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뉴욕 호텔 시장에서 다른 호텔들 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인수 당시 17위였던 뉴욕시 트립어드바이저 호텔랭킹도 지난해 10월 최고 2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뉴욕에 한국 호텔이 있다는 것은 한국 기업에도 긍정적 면이 있습니다. 뉴욕에서 컨퍼런스 등을 진행할 때 한국 회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기 때문입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