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현의 디자인 싱킹] 사용자 감성 이끄는 서비스 디자인

입력 2022-06-22 17:48
수정 2022-06-23 00:07
얼마 전 여운을 남기며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고객 여정 맵’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맵은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 시점부터 구매 및 사용에 도달하는 경로 및 과정을 가로축으로, 느끼는 감정의 기복을 세로축으로 시각화한 그래프다. 어쩌면 인생이 감정의 굴곡진 악보와도 같으며 고객의 여정과 드라마 속 인생 이야기가 대응이 될 수도 있겠다. 네 가지 구성 요소를 보자.

첫째, 고객은 주인공이다. 드라마에서는 엄마를 엄마로 못 불러온 40대 만물상 동석, 형제를 뒷바라지하느라 싱글인 생선가게 주인 은희 등 특이하게도 14명이나 되는 주인공이 대거 등장한다. 서비스디자인 과정에서도 어떤 제품 및 서비스를 사용할 만한 타깃 집단의 사용자 유형을 대표하는 가상의 인물 페르소나(persona)를 만든다. 늘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배우들은 드라마 속에서 연기하듯 서비스·경험디자인에서는 다양한 관계 속의 페르소나가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롤 플레잉을 한다. 드라마에선 ‘한수와 은희’ 편처럼 둘씩 짝지어진 주인공의 이름이 아홉 가지의 스토리 제목을 대신한다.

둘째, 작업 과정은 인생 여정 스토리다. 아침엔 넷, 점심 땐 둘, 저녁엔 셋인 것이 뭐냐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오이디푸스는 인간이라 했다. 우여곡절의 생로병사 과정인 인간의 일생을 보자면 종단 연구 시 적어도 80여 년이 걸리는데, 드라마를 보면 인생의 횡단면을 보듯 한 살 영아부터 70대 후반 노인까지 연배가 다 나온다. 드라마는 제주 오일장으로 생계를 잇는 인물들의 이성애, 우정, 가족애와 모·부성애의 네 가지 사랑을 소재로 한 아홉 가지 관계 속의 한과 정을 담은 옴니버스 휴먼드라마다.

고충 찾아내 창의적으로 해결을이 표현이 숲이라면 실제 드라마에서 생동감이 있기 위해선 나무처럼 디테일이 필요하다. 고등학생의 임신과 자퇴 이야기인 ‘영주와 현이’ 편과 친형제 같았으나 원수지간이 된 선후배 이야기인 ‘인권과 호식’ 편의 두 독립된 이야기가 제주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금지된 사랑이 결실을 맺어 사돈이 되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드라마 줄거리처럼 서비스·경험디자인에서도 놀이공원에서의 줄서기를 위한 경험디자인이나 중고 자동차를 사고팔기 위한 서비스디자인은 서비스 인식부터 사용 후기까지가 그 과정으로 엮여 있다. 디자인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사용자의 행태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 관련 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인과관계와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셋째, 감정 표현과 변화. 드라마에서 느꼈던 달콤하고도 떫은, 서정적이고도 애잔하게, 때론 신나고 시원하게, 이런 감정들이 맵에 표현될 요소다. 재즈의 기반이 된 블루스는 괴로움에 빠진 자기를 향해 부르는 슬픈 가락의 노래이며 또한 블루는 우울하거나 슬프다는 뜻의 형용사다. 블루스를 부르거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처럼 드라마를 본 뒤 마음속 깊은 울림이 남아 그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았다. 작가는 고달프고 메마른 인생살이 속에서도 다양한 사랑의 유형을 보여주며 사람 사는 인간 냄새를 풍기려 했고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를 응원하고자 했다.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감정이입은 심지어 이 잔잔하고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속에서조차도 간접광고(PPL)가 성공적이어서 주인공이 타던 쉐보레 자동차, 허기 채우느라 길 가다 먹던 에그드랍 샌드위치가 회자되는 효과를 낳았다. 가치있는 경험과 행복함 추구해야넷째, 갈등과 문제 해결. 가정폭력, 장애인, 미혼모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우연과 필연의 반복이 드라마라면 서비스디자인 과정은 발산과 수렴이 과정이다. 사용자가 기대한 것과 실제와의 차이가 갈등 요소이자 클라이맥스이며, 간극을 줄이는 수렴 과정이 문제 해결 과정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내게는 거꾸로 ‘올챙이 개구리 될 줄 모른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상호 이해 속에 배려, 용서가 화해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온다.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단이 문제를 해결하듯, 서비스·경험디자인에서는 설문이나 사용자 관찰이 아니면 알 수 없었던 고충을 잘 찾는 것이 좋은 문제의 발견이며 또한 어떻게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가 핵심이다.

서비스·경험디자인에서의 시나리오에선 사용자의 불편한 곳을 찾아 해결안을 제시하며, 그것을 앱이나 웹에서 인터페이스 디자인으로 풀어내야 한다. 과정에서 가치 있는 경험을 줌으로써 사용성, 유용성, 감성 등의 사용자 욕구를 충족시켜 만족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입각한 신선한 뭔가가 있어야 복잡해지는 고객의 행동을 바탕으로 마케팅 성과를 낼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더 나아가 행복함을 추구하는 서비스·경험디자인이 답이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