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반도체 수요 하락 전망이 국내 증시를 강타하면서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가 나란히 연저점을 경신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와 함께 반대매매 물량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하방 압력을 키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증시가 장부가보다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경기 침체 우려로 투자자들이 당분간 시장에서 발을 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스피지수 이달에만 6번째 연저점
22일 코스피지수는 2.74% 하락한 2342.81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일 기록한 연저점(2372.35)을 경신했다.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가 연저점을 바꿔 쓴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코스닥지수 역시 4.03% 급락하며 746.96에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20일 연저점(763.22)을 경신했다.
증시를 끌어내린 것은 외국인의 매도세였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을 합쳐 3819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날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가장 많이 판 종목 1, 2위는 삼성전자(555억원)와 SK하이닉스(458억원)였다. 기관 역시 두 시장에서 1439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증시에 부담을 줬다. 개인은 5011억원가량을 홀로 순매수하면서 물량을 받아냈다.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원·달러 환율 역시 외국인 수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1297원30전에 거래를 마쳤다. 위안화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 강세를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날 미국 증시는 상승했지만 이날 국내 증시는 내려가는 등 시장이 질서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매우 커졌다”고 했다. 반도체 부정적 전망이 주가 내려하반기 반도체업황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 게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날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목표주가를 27달러 내린 56달러로 제시했다. 3분기 PC와 중국 스마트폰 수요 부진으로 D램과 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내려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처럼 반도체가 중심 산업인 대만도 약세장이었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이날 2.42% 하락한 15,347.75에 마감했다.
반도체업황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잇달아 나오면서 올 들어 한국과 대만 증시는 다른 국가보다 더 큰 조정을 받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21.61%, 자취안지수는 16%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닛케이225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는 각각 10.76%, 10.05% 빠지는 데 그쳤다.
최근 증시가 잇달아 폭락하면서 ‘빚투’에 대한 반대매매 규모가 커진 것도 국내 증시 약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현재 20% 이상 손실이 추정되는 신용융자는 약 7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신용융자 규모(약 20조300억원) 중 38.9%에 해당하는 수치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국내 증시가 하락 구간에서 글로벌 대비 부진한 이유도 반대매매 매물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추가 하락이 발생할 때 증시의 체력보다 더 큰 하락폭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과매도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유가증권시장의 장부가치를 뜻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장기 박스권(0.9~1.1배) 하단인 0.95배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경기 전망에 대한 공포가 펀더멘털을 압도한 상황”이라며 “과매도 국면이라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저가 매수가 가능하나 긴 호흡으로 분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