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반포에 밀리다니…" 대치동 집주인들 불만 폭발

입력 2022-06-22 11:34
수정 2022-06-22 13:21
"규제 풀어준다더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그대로잖아요. 그러니 무슨 거래가 있겠습니까."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약칭 래대팰)에 사는 김모씨는 집을 내놓은지 한 달이 다되어 가지만 팔리지가 않아 고민이다. 주변에서는 호가를 낮추라지만 쉽지 않다. 자녀들이 장성해 독립한데다 남편도 퇴직을 했고, 연로한 친정어머니 근처인 옥수동으로 갈 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젠 마땅한 수입도 없다보니 팔고 나가려고 했는데, 도곡동이나 반포동 보다도 집값이 못한 현실에 실망했다"며 "아무리 학군지고 상급지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래가 없어서야 어딜 가겠냐"고 말했다.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3년째 묶여…"재산권 침해"서울 강남구 삼성·청담·대치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래절벽'이 심화되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규제에도 불구하고 거래가 이뤄졌지만, 약세를 보이는 최근에는 '가뭄'에 가깝다는 게 현지에서의 얘기다. 지역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 '거주지 이동 불가능'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3년 6월 22일까지 이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거래시 매수 목적을 밝히고 해당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거용 토지의 경우 실거주용으로만 이용할 수 있어 2년간 매매나 임대가 금지된다.

서울시의 결정이긴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규제완화를 예상했던 지역민들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대치동은 도곡동, 역삼동과 함께 대·곡·역(대치·도곡·역삼동)으로 불리며 강남구에서 집값을 리딩했다. 하지만 거래가 끊기다시피 하면서 일부 집값은 도곡동에 밀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22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들어 신고된 대치동의 아파트 매매건수는 52건이었다. 도곡동의 86건, 역삼동의 53건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에도 3개동 중 가장 적은 거래량(249건)을 보인데 이어 뜸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 씨가 내놓은 래미안대치팰리스 1단지의 경우 지난 4월 전용 84㎡에서 33억원, 113㎡에서 48억8000만원의 신고가 거래가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는 거래가 잡히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호가가 떨어지지는 않다보니 '거래가 이뤄지면 신고가가 될 것'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대치동의 A공인중개사는 "전·월세 수요만 있고, 매매 문의는 거의 없다"며 "아무래도 규제가 풀리는 현재시점에서 직접 실거주해야하는 대치동 아파트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거래는 재건축 아파트인 은마에서 간간이 나오고 있다. 래대팰과 다른 점이라면 호가가 낮다는 점이다. 지난달 전용 76㎡에서 25억원에 매매가 이뤄졌는데, 나와있는 매물들의 호가는 이보다 낮은 24억원대부터 형성되어 있다. 일부 매물은 최근 일주일새 2000만~3000만원의 조정을 거치기도 했다. "옆동네는 거래 좀 된다는데…"대치동이 고전하는 동안 도곡동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대치동과 길 하나로 마주하고 있는 도곡렉슬의 경우 지난달 134㎡에서 49억4000만원의 신고가 거래가 나왔다. 3002가구에 올해 17년차지만, 전세를 끼고 매입이 가능하다보니 매매문의는 꾸준한 편이다.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또한 최근 2개월간 면적별로 신고가가 쏟아지고 있다. 대형 면적에는 다주택을 처분하고 똘똘한 한채로 실거주하려는 수요까지 붙고 있다.

도곡렉슬 단지내 상가의 B공인중개사는 "신고가 소식이 나오고 매물이 늘었다"며 "입지가 좋다보니 전용 84㎡에서는 전세를 끼고 내놓은 매물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 단지에서는 19억원의 전세계약이 나왔다. 매물들의 호가가 31억~3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2억~13억원에 갭투자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가 전날 내놓은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에 따라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래가 더 경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전월세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실거주 의무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6개월 이내에 전입하지 않으면 대출이 회수되지만, 앞으로는 2년 이내에만 전입하면 되도록했다. 하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은 해당되지 않는다.

은마 아파트 내 C공인중개사 대표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강남지역에서 갭투자가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아파트가 몰려 있는 대치동이나 잠실동에서는 집을 팔고 이사가기가 쉽지 않다보니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주인들은 집이 나가지를 않다보니 주변지역이나 서초구 집값 얘기하면서 '재산권 침해 아니냐'고들 한다"고도 전했다.

한편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서울 송파을)은 서울시가 송파구 잠실동 토지거래허가제 재지정 상정을 예정한 데 대해 토지거래허가제의 부작용과 위헌적 요소를 들며 비판하기도 했다. 배 의원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이후 실패한 정책의 부작용으로 주민들이 극심한 재산권의 피해를 받아왔다"며 "실효성 없이 위헌 문제만 다분한 제도를 또다시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것은 부동산 폭등의 책임을 죄 없는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