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개편'에 그친 분상제 개선…'로또 청약' 가능성도 여전

입력 2022-06-21 16:06
수정 2022-06-21 16:58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대책 첫 타깃은 분양가상한제였다. 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도록 해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을 줄이고 민간 주택 공급을 빠른 시일 내 확대하기 위해서다.

다만 그간 주택업계에서 요구해온 분상제 폐지가 아닌 개선으로 방향을 잡았다. 분상제의 핵심인 택지비 산정 방식도 이번 개선안에선 빠졌다. 단기간에 분양가가 급등해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일을 경계해서다. 자재값 상승분을 적기에 분양가에 반영토록 했지만 전체적인 분양가가 일정 수준에서 통제되도록 각종 장치를 마련해 주택 공급 효과가 얼마나 클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1일 분양가 제도 운용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분상제 개편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정부는 올 하반기를 목표로 발표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올 들어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서울 등 주요 도심에서 정비사업들이 줄줄이 좌초되자 일정을 앞당겼다. 공사비 산정을 두고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이 잇따르고, 건설사들이 정부의 규제 완화를 기다리면서 분양을 미루자 도심의 신규 주택 공급이 막히고 있다는 불만이 커진 영향이다.

분상제는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사의 적정 이윤을 보태 신규 분양 아파트의 가격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산정된 가격 이하로 신규 아파트를 분양해야 한다. 통상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80% 이내에서 책정되고 있다.

국토부는 앞으로 분상제 적용 대상인 정비사업의 분양가 산정 때 세입자 주거 이전비와 영업 손실 보상비, 명도 소송비, 기존 거주자 이주를 위한 금융비용, 총회 운영비도 일반 분양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정비사업은 공공택지와 달리 총회를 열거나 기존 거주자의 이주·명도 등 토지 확보 과정에서 부가 비용이 발생한다. 현행 분상제에선 이런 비용을 제대로 반영할 근거가 없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주거 이전비의 경우 세입자에게 4개월 가계지출비(4인 기준 통상 2100만원), 현금청산 소유자에겐 가구당 2개월치 가계지출비가 반영된다. 영업 손실 보상비는 휴업 4개월치, 폐업 2년치를 반영토록 한다. 명도 소송에 들어간 변호사 비용도 분양가 산정에 포함된다. 이주비 대출 이자는 실제 발생한 이자를 반영하되 상한을 설정해 운영키로 했다. 조합 운영비는 사업비의 0.3% 안에서 정액으로 반영한다.

또 분상제 대상 아파트에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자재값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바뀐다. 이와 함께 현재 주요 자재로 선정된 4개 품목(레미콘·철근·PHC(고강도 콘크리트)파일·동관)을 공법 변화와 사용 빈도를 고려해 5개(레미콘·철근·창호유리·강화 합판 마루·알루미늄 거푸집)로 바꾼다.

현재 기본형 건축비는 매년 3월 1일과 9월 15일을 기준으로 두 차례 고시되고 있다. 고시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철근·레미콘 등 주요 자재 가격이 15% 이상 변동되면 이를 반영해 다시 고시할 수 있다. 앞으로 기본형 건축비 상승률 산정 방식이 바뀌면 최근 고시 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도 건축비 비중 상위 2개 자재(레미콘·철근) 상승률의 합이 15% 이상이거나 비중 하위 3개 자재(유리·마루·거푸집) 상승률의 합이 30% 이상이면 재산정해 고시할 수 있다. 예컨대 철근값이 10% 오르고 레미콘값이 14% 오르면 지금은 기본형 건축비 인상이 어렵지만 이젠 가능해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상제는 그간 신축 주택의 저렴한 공급에 기여해왔지만 정비사업의 필수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지 못해 개선 요구가 많았다"며 "공급망 차질, 자재값 상승, 규제 완화 기대 등으로 분양 일정이 지연되고 있어 조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분양가 심사 절차도 바뀐다. 지금까진 민간택지 택지비 산정 때 감정평가 결과를 한국부동산원에서 비공개로 검증해왔다. 앞으로는 한국부동산원 이외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택지비 검증위원회가 신설돼 검증 작업을 같이 한다. 택지비 검증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려는 취지다.

이번에 개편된 분상제는 현재 시점에서 입주자 모집 공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업장부터 적용된다.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는 1.5~4.0% 상승할 전망이다. 물론 조합원 수나 일반분양 세대 수, 사업 기간에 따라 분양가 상승 폭은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서울의 A재개발 사업장의 경우 이번 제도 개선으로 분양가가 약 2.3%(3.3㎡당 55만원)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A사업장의 현행 분양가는 3.3㎡당 약 2440만원이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주거이전비(1만원), 손실보상비(25만원), 명도소송비(6만원), 이주비 금융비(10만원), 총회 등 소요경비(4만원) 등이 추가되고 기본형 건축비 상승액(9만원)까지 더해지면 분양가가 약 2495만원으로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는 현재 3.3㎡당 3700만원대인 일반 분양가가 제도 개선(정부 예상 평균치인 2% 상승 가정)을 통해 3.3㎡당 74만원 가량 상승할 전망이다. 전용 84㎡ 기준으로 분양가가 약 2500만원 가량의 오르는 셈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제도 개선으로 정비사업이 주택 주공급원 역할을 하는 서울 등 도심 지역의 공급 가뭄이 다소 해소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5%대로 올라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봤을 때 최대 4%인 분양가 상승률로는 공급 확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합 등이 강하게 요구해온 택지비 산정 방식 변경이 제도 개선에 빠져 있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가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택지비는 놔두고 비중이 적은 가산비 등만 미세조정해선 주택 공급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각 사업장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 제도 개선이 당장 정비사업 활성화에 큰 추진 동력이 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제도 개선에도 분상제 아파트 가격이 시세보다 여전히 20~30% 낮아 서울 등에서 '로또 청약' 열풍도 여전할 것이란 지적이다.

한편 정부는 올 3분기에 250만가구 이상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닌 철저히 시장 수요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250만가구 이상 주택 공급 계획을 설계하겠다"며 "청년·무주택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양질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