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자주 '규탄'하고 '질타'한다. 꼭 그래야할 주제나 대상이 아닐 때도 그렇다. 그러고 뒤돌아 서서는 종종 너털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까지 공격해야할 대상이 아닌데 좀 오버했다는 쑥스러움일까.
지난 21일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초과세수 진상규명과 재정개혁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그랬다. 모처럼 정부와 국회의 담당자부터 재정 분야 전문가들이 총출동한 토론회였다. 그에 걸맞게 발제와 토론도 수준 높게 이뤄졌다.
다만 '진상규명', 숨겨진 사실을 까발려 음모를 밝히겠다는 단어가 토론회의 격을 떨어뜨렸다. 진상규명하겠다는 민주당의 속내
발단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이다.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며 53조원의 예산 전부를 초과예산 수입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9일까지만 해도 여당이던 민주당이 뒤집혔다. 1차 추경 당시만 해도 민주당의 35조원 조달 요구에 정부가 난색을 표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4개월 전 문재인 정부에서 없다고 했던 돈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차고 넘칠 정도로 생겼으니 의심스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윤 정부 추경에 사용된 초과세수의 근거를 살피겠다며 지난 10일 '초과세수 진상규명과 재정개혁추진단 TF'를 발족한 이유다.
21일 토론회는 해당 TF로서는 첫번째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그간의 맥락을 아는 기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출석한 기획재정부 담당 과장을 질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토론회에 갔다.
하지만 TF 단장인 맹성규 의원을 비롯해 윤후덕 기획재정위 위원장 등 민주당 의원들은 시종 진지하게 토론을 청취했다. 정부에 대한 발언도 비판보다는 세수 추계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하는 내용있었다. 사회를 맡은 김수흥 의원도 차분하게 논의를 주도해 나갔다.
TF 첫 회의 당시 "엉터리 추계에 충격을 받았다"며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던 박홍근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아서였을까. "미래를 어떻게 아느냐"는 기재부의 항변이날 오전 10시반에 시작된 토론회는 점심 시간인 1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과 김문건 기재부 조세분석과장 간의 토론이 중심이 됐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초과세수 발생 사실을 더 일찍 알 수 없었냐는 것이다. 빨리 알았다면 문 정부 하에서 이뤄진 올해 1차 추경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던만큼 이번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연구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21년 전체 본예산 대비 초과 세수는 61조4000억원이다. 하지만 기재부는 올해 초까지도 50조6000억원으로 봤다. 하지만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추가로 들어온 국세 수입을 감안하면 이는 터무니 없는 추산이었다.
실제 민간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 집계로도 11월 현재 58조1000억원이 더 걷힌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실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기재부가 오차가 큰 추계를 유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쟁점이 되는 올해 세수 추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정부는 344조1000억원의 국세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올해 정부는 예산을 짜며 국세 수입이 작년보다 적은 343조 4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올해 6%의 경상 성장률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세수입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올해 예산을 짜는 시점에 기재부가 상당한 초과 세수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기재부측은 추세 만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반박했다. 김 과장의 설명이다.
"특정 시점에서 전년 동기 대비해 얼마가 많이 걷혔다는 것으로 연간 세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해당 요인이 앞으로 계속 지속될 사안인지 아닌지에 따라 갈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후 세수 증가의 특징은 자산시장 호황에 따른 양도세 등 관련 세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같은 자산시장 호황이 계속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작년 하반기 세수를 추계할 때 역시 금리 인상과 세금 부담 등에 따라 자산 시장이 서서히 냉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자산 시장에 대해서도 당초 보수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이같은 자산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 전체 국세 수입 추계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적을 수도 있다. 자산시장과 같은 큰 변수가 있는 상황에서 세수 추계를 낙관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수가 남으면 국가재정법을 통해 국채를 상환하는 등 어떻게 해야할지가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만, 모자랄 때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진지한 정책 토론회였다면이외에도 토론회에서는 세수 추계 및 재정 정책을 둘러싼 건설적인 논의가 많이 이뤄졌다. 윤후덕 의원도 "세수 추계를 잘하고 못하고로 기재부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며 "세수가 모자랄 때 처리 방법을 매뉴얼화해 보수적인 세수 추계 관행을 개선하고, 보다 정확한 세수에 기반해 예산을 짜기 위해 정부 예산 편성 시점도 늦춰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토론회 주제에 '진상규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이같은 내용은 묻혔다. 토론회가 끝날 때 쯤에는 토론자와 의원들, 보좌진들 밖에 토론장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진상규명할 내용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은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당 관계자들이 알았을 것이다. 한 토론자는 토론회장을 빠져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제를 진상규명이 아니라 원인 분석이라고 했다면 좋았을 토론회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