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전력에 대해 “한전 스스로 지난 5년간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직격했다. 한전이 올 1분기에 약 7조78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연간으론 20조~30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예상되는 등 경영난이 심각해진 데 대해 한전의 자구노력이 미흡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정부는 당초 21일로 예정했던 전기요금 결정을 연기했다. 추 부총리는 “한전의 자구노력을 점검하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며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전기요금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할 것”이라고 했다. 한전의 고강도 자구노력을 전제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기요금은 연료비 연동제의 분기 기준 최대 인상폭인 ㎾h당 3원보다 더 큰 폭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한전 자구노력 미흡”
추 부총리는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전이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물가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엔 “요금은 국민 부담과 직결된 부분”이라며 “정부는 국민의 입장에서, 국가 경제적 입장에서 종합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가 꽉 찼다’는 지적엔 “한전이 왜 그렇게 됐느냐. 한전의 수익이 있을 때는 없었느냐”고 반문했다. 흑자를 낼 때 방만경영을 하다가 경영난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만 요구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추 부총리는 “이런 부분을 국민께 소상하게 알리고 요금을 올려야 하면 상응하는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공기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다.
한전은 최근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분기당 최대 인상폭인 ㎾h당 3원 올려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또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외에 △기준연료비 인상 △연료비 조정단가 상·하한폭 확대 △연료비 미수금 정산 △총괄원가 인상 등을 통해 전기료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국제 연료비 상승과 전기료 인상 억제 등의 영향으로 한전은 올 1분기에 약 7조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대로 두면 올해 적자폭이 3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여당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 인상 요인이 굉장히 컸는데, 문재인 정부가 인위적으로 억눌렀다”고 말했다. 가구당 최소 월 900원 이상 오를 듯
정부는 ㎾h당 3원 이상 전기요금을 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고물가 부담에도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검토하는 건 한전의 재무 악화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 연료비 연동제의 틀(분기 ㎾h당 ±3원, 연간 ㎾h당 ±5원) 내에서 전기료를 인상해서는 감당이 안 되는 한계 상황”이라며 “(올 3분기에) ㎾h당 3원만 인상해서는 한전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의 분기당 상·하한폭인 ㎾h당 3원 외에 나머지 인상 요인을 반영해 전기료를 올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계산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요인은 3분기에만 ㎾h당 30원 이상이다. ㎾h당 30원까지 올리지 못할 경우 나머지 부분은 한전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재정 지원 등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3분기 전기요금을 ㎾h당 3원만 인상해도 월 304㎾h를 소비하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전기료가 912원 오른다. 여기에 총괄원가와 기준연료비 인상 등이 동시에 이뤄져 ㎾h당 인상폭이 10원으로 확대되면 가구당 월 전기료는 3040원 오른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기료 인상 방안을 찾아서 이른 시일 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