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1970년대부터 가꿔온 충북 충주 인등산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상용이던 인등산(사진)은 산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를 크레딧으로 바꿔 거래하는 시장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등산을 통해 ESG 경영 강화와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게 SK그룹의 설명이다. SK그룹의 숨은 자산
숲이 돈이 되는 시대가 왔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산림 투자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숲이 거래가 가능한 자산으로 분류되면서 숲의 가치가 껑충 뛰었다는 설명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조기업이 숲을 활용한 크레딧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자체적으로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숲을 가꾸면서 확보한 탄소 크레딧으로 대체하겠다는 계산이다. 조림사업은 ESG 기업이란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파리기후협정 제5조는 ‘온실가스 흡수원 및 저장소의 역할을 하는 산림을 보존, 증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K그룹이 조림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2년이다. 국내 최초로 기업형 조림사업회사를 꾸리고 수도권에서 먼 충주 인등산, 영동 시항산 등의 황무지를 사들였다. 50년간 국내 조림지 네 곳에 호두나무와 자작나무 등 고급 활엽수 400만 그루를 심었다.
새로 조성된 숲 면적은 서울 남산의 40배(4500㏊)에 달한다. SK는 이곳에서 흡수한 탄소를 크레딧으로 만들어 거래 중이다. 탄소배출권이 정부의 규제가 만든 시장이라면 크레딧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량을 사고파는 개념이다. SK는 5년마다 산림청에서 산림인증을 받고, 산림탄소상쇄제도를 통해 이곳에서 감축한 탄소량을 산림청에 등록하고 있다.
SK는 연내 개인과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자유롭게 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산림 기반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플랫폼으로 기업 등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돕고 산주(山主)에게는 수익을 제공할 방침이다.
SK그룹은 강원 고성 국유림(85㏊)에서 청정개발체제(CDM) 사업도 하고 있다. CDM은 숲이 흡수한 온실가스를 측정한 뒤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는 사업이다. 이론적으로 1㏊의 숲이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8t 정도다. 이곳의 나무 25만 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680t 정도라는 계산이다. 해외 기업도 앞다퉈 산림투자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 기업들도 일찍이 숲에 투자했다. MS는 2015년 미국 워싱턴주 애시퍼드 근처의 국립공원에 있는 레이니어산에 투자하고 이 숲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3만7000t에 해당하는 탄소배출권을 구입했다.
지난해에는 내추럴캐피털거래소(NCX)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NCX는 숲을 보호하려는 기업과 삼림 소유주를 찾아 연결해주는 사업을 한다. MS는 탄소배출권 매입을 포함해 1975년 이 회사가 설립된 이후 배출한 탄소를 2050년까지 모두 제거할 계획이다.
지난해 미국 금융사 JP모간은 산림관리업체 캠벨글로벌을 인수했다. 캠벨글로벌은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170만에이커(약 69만㏊)의 산림을 관리 중인데 이 숲의 가치는 6조원대로 평가된다.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세일즈포스도 NCX에 투자하고 10년 동안 나무 1조 그루를 심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배출권 가격은 2030년까지 연평균 11% 뛸 전망”이라며 “자연을 기반으로 한 탄소 저감 관련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