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혁신은 ‘계’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 [긱스]

입력 2022-06-29 16:39
수정 2022-07-06 08:28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당신은 어떤 ‘계(系,界)’에 속해 있나요? 어떤 뿌리(系)에 속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나누는 갈라치기(界)로 이어지기 일쑵니다. 투자은행(IB) 금융맨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스타트업계를 향해 진짜 혁신은 ‘계’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스타트업계 내부인이 된 그가 작심하고 쓴소리를 하는 것도 혁신을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계(系,界)'에 속해 있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은 광활한 은하의 태양계. 그중 지구에 사는 인간계로서 한글을 읽을 줄 아는 한국계로 분류된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계’를 나열해보면 재미있다. 언론계, 법조계, 교육계, 정계, 재계, 산업계, 노동계, 각종 업계, 의료계, 친박계, 친문계. 그 큰 계 아래로 세부적인 ‘파’, ‘출신’, ‘지역’으로도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계’가 형성되고 조직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피아를 구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 때문인 것 같다.
혁신의 시작은 그렇게나 많은 계와 파, 이토록 다양한 계를 혁신의 관점에서 관찰하면 어떨까? 혁신은 기득권이 쌓은 성벽, 즉 ‘계’를 무너뜨리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생존과 성장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조금씩 쌓아온 기존 성벽을 파괴하는 데서 혁신이 나오는 것이다.

혁신의 주인공은 안전한 성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와 제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군의 자발적 부적응자들이다. 이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면서 성벽과 ‘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새로운 아이디어(질문)와 기술의 발전은 ‘계’를 무너트리는 시작이 되고, ‘계’ 간의 벽을 허문 합종연횡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낸다.

아마존은 기존 유통업계 질서를, 타다는 운송업계를, 유튜브는 언론과 교육을 파괴하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에어비앤비는 여행과 숙박 경험을 변화시켰고, 마켓컬리와 쿠팡은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다.

아이폰은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며 없어서는 안 되는 인체의 ‘오장칠부’화 돼버렸다. (여기서 용감하게 미래를 예언하면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은 손으로 들고 다니는 휴대기기에서 다양하게 분해돼 안경과 반지와 시계와 신발과 옷과 그리고 신체 내부로 들어올 것이다. 아주 조만간)

기술로 무장한 작은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계’를 창조적으로 분해(unbundling)하고 있다. 비금융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 인터넷 은행인 토스를 통한 서비스 및 상품 거래와 결제는 지난해에만 63조6702억원에 달했다. 2020년 결제금액 42조7824억원보다 48.8% 증가한 금액이고, 건수로는 22억4990만 건에 달한다.

이 모든 변화와 혁신은 모두 외부에서 시작됐다. 의미 있는 혁신은 내부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주변부 혹은 외부에서 일어났다. ‘~계’, ‘~파’ 내부에서도 혁신은 주창된다. 그러나 대개는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향상 정도의 ‘개선’의 단계에 머무르다, 외부의 파괴적 혁신에 의해 사라져온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미국 유니콘 55%는 이민자의 손에서지구상에서 한 개인이 소속된 가장 큰 계는 아마도 ‘국가’일 것이다. 개인이 원래 소속된 국가에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한다는 것은 ‘계’를 바꾸는 것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미국 정책재단’(NFAP)의 기업가치 10억달러가 넘는 ‘유니콘 스타트업’의 창업주를 분석한 자료에 관련한 얘기가 나온다. 미 전역 91개 유니콘 가운데 55%에 해당하는 50개가 이민자들에 의해 창업됐다는 내용이다. 또 2011년 기준으로 미국 대학이 등록한 특허 중 4분의 3이 이민자가 참여한 특허라고 한다. 대학들이 등록한 1466개의 특허 가운데 76%에 해당하는 1114개가 이민자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이 숫자를 통해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계’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절박함이 ‘혁신’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회가 ‘계’를 바꾼 사람에게는 보인다.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고 새롭게 질문하는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성을 쌓은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든 자는 흥한다’는 칭기즈칸의 유언에서 성을 ‘계’로 치환하면 좀 더 의미가 뚜렷해지는 것 같다. 익숙하고 편안한 ‘특정계’에 소속돼 안주하면, 결국 ‘길’을 통해 교류하면서 시각을 넓힌 다른 '계’의 이민자(혁신)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다. 파괴당할 것인지 스스로 파괴해 생존할 것인지, 선택지는 당연하다.

세종대왕의 한탄에 담긴 고민은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교육이다. 우리 교육계가 이제까지 추구해온 ‘주어진 문제 해결 능력 함양 교육’에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질문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과, 이과로 나누어진 ‘계’의 파괴가 우리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한 ‘혁신’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성을 쌓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그 성을 허물고 길을 내도록 안내하는 게 교육의 역할이다.

세종대왕은 ‘사람들은 모두가 새로 만드는 것을 꺼리는구나!’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세종대왕 재위 30년 동안 199번의 기우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농경사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얻겠다면서 산술적으로 1년을 기준으로 7번,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봄 여름 6개월을 기준으로 거의 매달, 기우제를 올린 것이다. 사실 세종대왕은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다. 당시 조선보다 기술이 발달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가뭄 대응 설비를 도입 보급한 것이다. 하지만 수요자인 농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새로 만드는 것을 꺼리는구나!’. 인간은 죽어도 익숙한 것이 편한 것이다. 한심해 보이는가. 누가 ‘나는 끓는 물 속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정말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라도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과 ‘계’의 파괴는 지속돼야 한다.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교육계의 문과와 이과 성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래를 살아갈 수요자인 학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현재를 살아가는 교사와 교육 공무원을 위한 것인가. 생존을 위한 정보와 지식 전달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구글과 네이버 등으로 대체됐고, 경험 축적을 필요한 지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넘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똑똑하고 현명한 것도 이런 기술 발전의 결과가 아닐까?

구글과 네이버는 문과생과 이과생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류 모두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집단 지성의 구성원으로 길을 만들어 연결하여 살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에선 ‘과’, ‘파’,’지역’,’계’로 구분하며 나누고 사는 것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끓는 물 속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창업 생태계의 자체적 파괴도 필요하다. 수요자이자 파괴자인 혁신가를 진정 위하기보다, 공급자의 혁신연극이 좀 더 주목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각종 행사는 주인공인 창업가보다 주최 측과 귀한 손님을 위한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각 기관의 담당자는 기간을 채우면 다시 자기 본업인 성벽을 쌓는 일로 돌아가는 게 다반사다. 그런 돈과 행사로 혁신을 살 수 있는가.

몇 년 전 처음 스타트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창업 생태계’라는 용어다. 이 생태계라는 단어는 다른 생태계와 연결된 것이 당연함에도 이 또한 폐쇄적인 ‘계’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든 ‘계’의 속성 중 하나인 그들만의 언어와 유별난 동지 의식은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 무엇이 다를까? 세상에 없는 서비스와 제품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서, 시작이 작고 초라하다며 ‘약자’로 보호받고 대접받겠다는 건 무슨 아이러니인가.

창업 생태계의 주인공은 이 사회를 의미 있게 바꾸고자 하는, 어떻게 보면 자발적 부적응자인 창업자가 돼야 한다. 실패가 당연한 창업을 ‘지원’이란 이름으로 응원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만 유발할 수 있다. 창업 생태계라는 이름으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또 대기업들은 그들의 사회공헌 부서 활동을 위해 창업가를 배우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 어설픈 화장과 연극이 혁신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경제신문의 ‘스타트업부’의 정식 편제는 의미 있는 일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튜브 등 새로운 뉴스 채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 불편한 시도를 하는 것 같다. ‘언론계’를 넘어선 ‘창업계’와의 연결이 혁신의 시작이다. 현재로서는 광고 물량이 없는 창업계에 취재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모두 혁신을 쉽게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가진 자산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 채 ‘개선’에서 끝나 버린다. 합종연횡의 혁신이 일어나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고 부서를 새롭게 만든 한국경제신문을 응원하며, 성을 쌓지 않고 길을 만들어 가는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주기를 바란다.



김홍일ㅣ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1966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대구고, 경북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1년 산업은행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까지 리먼브라더스, 노무라증권 등에서 일하며 금융권 경력을 쌓았다. 2011년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대표, 2013년엔 IBK자산운용 부사장을 지냈다. 2018년부터 3년간 디캠프 센터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