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름값은 왜 항상 10분의9 센트로 끝날까

입력 2022-06-18 06:00


국제 유가가 연일 치솟으면서 운전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주 미국내 휘발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갤런(3.78L)당 5달러(약 6400원)를 돌파했고 일부 주에서는 6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 주유소의 가격표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모든 가격 끝에 10분의 9 센트가 붙어있다. 즉 미국의 기름값에는 항상 0.9센트이자, 0.009달러가 붙는 셈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이 평범하면서도 거추장스러운 0.9센트의 기름값 뒤에는 오랜 역사와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고 전했다. 이 ‘소수점 가격’은 20세기 초 미국의 주(州)들이 고속도로를 짓고 유지하기 위해 기름에 대한 판매세(稅)를 걷기 시작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위스콘신주 쓰리 레이크스에 있는 노스우즈 석유박물관을 운영하는 에드 제이콥슨 전 주유소 사장은 “당시 세금이 0.1센트 단위로 부과됐으며, 주유소들은 이를 운전자들에게 직접 전가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온전한 1센트를 부과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에는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0센트였다. 그래서 1센트를 추가하는 것은 대공황 기간 한 푼이 아쉬운 운전자들에게 굉장히 큰 액수였고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주유소들은 10%를 올려 11센트를 받는 대신 소수점 금액을 더해 10센트대의 가격을 유지했다.

1950년대 각 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발달하고 주유소들은 큰 게시판에 가격을 써붙여 광고하면서, 대부분 소수점의 최대치인 0.9센트를 더했다. 제이콥슨은 “이것은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이자, 달러를 최대한 짜내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로버트 쉰들러 비즈니스캠던 대학의 마케팅 교수는 “99센트를 붙이는 가격 설정은 소비자가 거래를 잘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흔한 마케팅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즉 소비자에게 19.9센트 가격은 20센트보다 상당히 낮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짝수보다 홀수를 좋아하고, 가격이 홀수로 정해져있으면 실질적인 가격보다 더 싸게 느낀다고 한다. 이를 홀수가격이론(Odd Price Theory)이라고 부른다.

미국 유가정보업체 OPIS의 에너지 분석 책임자인 톰 클로자는 “주유소 주인들은 0.9센트를 올리는 것보다 0.1센트가 빠진 금액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4.999달러와 5.009달러는 체감상 크게 느껴지며, 운전자 역시 5달러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미자동차협회(AAA)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5달러를 넘었지만, OPIS에 따르면 일반 휘발유 1갤런당 가장 자주 보이는 가격은 여전히 4.999달러이다.

소수점 가격을 끝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1984년 아이오와주는 불법화했다. 당시 아이오와 주의 한 상원의원은 “우리는 0.1개의 동전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1989년 주 정부는 이 법을 폐지했고 대부분 주유소는 원래의 소수점 가격으로 돌아갔다.

조영선 기자 cho0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