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선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는 기업들이 꾸준히 등장합니다. 대학가는 이른바 'ESG 리더'를 기른다며 ESG 관련 학과나 전문가 과정을 속속 신설하고 있습니다. ESG 관련 투자상품도 즐비합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주식형 ESG 펀드 총 52종에 1554억원이 유입됐습니다. 업계나 학계, 투자자들을 가릴 것 없이 그야말로 'ESG' 열풍입니다.
이런 가운데 관심 가질 만한 논문이 올 4월 한국국제회계학회의 학회지에 소개됐습니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저탄소 인증이 외국인투자자의 지분율에 미치는 영향'으로 조선대 경영학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재희 한전KPS 품질경영실 과장이 제1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자본시장의 '큰 손' 외국인투자자가 저탄소 정책을 실천하는 기업을 선호하는지 알아본 것인데요. 해외 선행연구에서도 환경 성과와 기업가치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일관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자가 두 항목 간 '양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2018년 대비 40% 감축)를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업 경영에서 탄소배출과 관련한 정보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외국인투자자도 이런 저탄소 성과를 핵심 지표 중 하나로 삼나 봅니다. 논문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들은 정부로부터 저탄소 성과를 인증 받은 기업에 대해 비인증 기업 대비 적극적인 지분 참여를 단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해 정 과장은 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금융업 제외) 중 2019년에 탄소성적표를 인증 받은 기업 41곳을 골라낸 뒤, 이들 기업과 동종산업에서 기업규모가 비슷한 104개 기업을 대응해 표본을 구성했습니다. 탄소성적표지란 제품 생산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해 제품 겉면에 라벨 형태로 붙이는 제도입니다.
정 과장은 논문에서 "외국인투자자 지분율과 탄소발자국, 저탄소 인증제품 수는 각각 1% 수준에서 양의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개수가 많을수록 외국인 지분율이 비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비인증 기업집단과 비교할 때 지분율은 뚜렷하게 높았다"고 전했습니다.
나아가 정 과장은 역으로 외국인의 지분참여가 기업의 저탄소 인증에 미치는 영향도 규명했습니다. 통상 외국자본은 장기투자 성격의 자금이 많은 만큼, 외국인 비중이 클수록 기업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착한 기업'에게 자금을 대는 외국인투자자의 행보가 기업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 과장은 "탄소저감 정책을 인증 받은 기업은 외국인의 지분참여를 유입시킬 수 있다"며 "기업 경영진에게 탄소배출이 지속가능경영을 저해해 결과적으로 외국인투자자의 이목을 덜 끌 것이라는 위기감을 인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탄소배출은 기업의 환경부채 성격으로 인식돼 잠재적 자본비용과 불확실성 위험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에만 좋은 일일까요? 투자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정 과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투자자들은 무엇보다도 '종목 선정'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외국인투자자 지분율을 주요 지표로 고려하는 투자자들이 ESG 실천 기업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