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돼버렸다"…K팝 아이돌 시스템 도마 위에 올랐다

입력 2022-06-17 11:33
수정 2022-06-17 11:34


"랩을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

지난 9년간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룹 방탄소년단이 각자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Dynamite'까지는 우리가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이제 'Butter'랑 'Permisson to Dance'부터는 우리가 이제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지금 방향성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어 "케이팝도 그렇고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도록 놔두지 않는 것 같다"며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그러면 인간적으로 성숙할 시간이 없다.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시간을 보낸 다음에 숙성해 나와야 하는데, 방탄소년단을 10년 하다 보니까 숙성이 안 되더라"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억지로 쥐어짜 내고 있었다.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를 계기로 K팝 아이돌의 무리한 스케줄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히 이어지게 됐다.

단체 숙소 생활과 칼군무 등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시스템에서 방탄소년단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소속사보다 멤버들의 영향력이 더 커지면서 솔로 활동을 원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BTS의 깜짝 발표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CNN, 영국 가디언·BBC, 일본 마이니치신문 등 전 세계 유력 외신들이 이들의 활동 중단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충격적”이라며 영국 원 디렉션, 미국 엔싱크 등 활동 중단 선언 후 복귀하지 않은 유명 보이그룹 사례를 거론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지난 16일 BTS의 활동 중단 소식을 전하며 이번 사건이 K팝 산업 내에 존재했던 내부적 균열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BTS가 번아웃(Burnout·소진증후군)을 호소하게 된 배경에는 ‘빠른 주기의 육성과 소비’라는 산업적 병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닛케이는 이번 BTS의 활동 중단 선언이 향후 K팝 시스템에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동안 아티스트를 성장시키기보다는 공장처럼 단시간 내에 소모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기계적 양산 시스템이 이번 BTS의 문제 제기로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탄소년단의 '쉼표' 공언에 K팝 성공 신화 이면에 가려졌던 아이돌 양산 시스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기획사들이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앞세우며 아이돌 멤버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고갈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최정상 그룹의 폭탄선언에 글로벌 팬덤이 동요하고, 주가 하락으로 하이브 시가 총액이 2조원가량 증발하자 멤버와 소속사 모두 "해체는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