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프라 투자는 발전을 약속하는 동의어가 됐다. 사실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경제 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발상은 비교적 최근 아이디어다. 1950년에 뿌리 내린 이론으로, 여러 논문이 경제 발전의 선행요소로 추켜세우기 전에는 ‘인프라’라는 용어조차 일반적이지 않았다. 인프라 문제가 아니다인프라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인프라 자체가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는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높이 걸려 있는 고가도로를 볼 수 있다. 난간조차 없이 허공에 세워진 이 고가도로는 40년째 방치돼 있다. 케이프타운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는, 좋은 일자리가 있는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설을 시작했지만 정작 이들에게 허락된 고임금 일자리는 없었다. 이에 따라 고가도로를 이용할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반면 스코틀랜드에는 1907년 건설된 싱어 철도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볼티모어와 오하이오 투자자, 기업가들이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역은 지금도 역할을 맡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도로 건설에도 많이 있다. 굿이어타이어 회사의 회장이던 프랭크 세이버링은 이사회와의 상의도 없이 도로 건설사업에 30만달러 제공을 약속했다. 달릴 도로가 있어야 타이어 판매가 늘어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적인 인프라의 핵심은 ‘무엇을 위해’ 인프라가 필요한지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드 인프라·소프트 인프라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2017년 말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마레아’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했다. 미국의 버지니아와 스페인의 빌바오를 연결하는 약 6600㎞ 길이의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을 설치한 것이다. 1800년대 철도가 상품과 서비스 운송에 이바지했듯, 디지털 인프라는 정보를 나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인프라를 통해 높이려는 가치다.
일반적으로 인프라는 어떤 사회나 기업의 원활한 운영에 필요한 물리적이고 조직적인 기본 구조와 시설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그의 유작 《번영의 역설》을 통해 인프라를 하드웨어 측면과 소프트웨어 측면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드 인프라는 도로, 교량, 에너지 체계와 통신 체계 등이고 소프트 인프라는 금융과 보건, 교육 체계 등이다. 이렇게 범주화하고 나면 인프라는 ‘어떤 사회가 가치를 저장하거나 유통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도로는 자동차와 트럭, 오토바이 등을 유통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며 학교는 지식을, 병원은 진료를 유통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인터넷과 항구도 각각 정보와 상품을 운송하는 효율적인 도구인 것이다. 가치에 초점을 맞춘 투자인프라는 그 자체로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인프라는 어떤 목적에 맞게 쓰이기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국가에 ‘학교’를 건설해 준다고 해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의 랜트 프리칫 교수도 이를 지적한다. 국제적 관심이 학교 진학률 개선에 집중돼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만, 교육이 목표하는 가치가 비례해서 달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육은 동의어가 아니다.
결국 인프라 투자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통해 창조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새롭게 지어진 텅 빈 학교,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인도의 공중화장실, 애물단지로 전락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월드컵 경기장 등은 가치에 대한 고민 부재의 폐해다. 오늘날 활발하게 투자되는 스마트팩토리, 5G 통신망, 클라우드센터 등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인프라는 그것이 유통시킬 수 있는 가치만큼 가치를 지닌다. 가치 중심의 인프라 투자만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