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에서 세계 30여 개 주요 국가의 정부가 수소경제 전략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소경제의 미래에 대한 회의가 여전히 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원유와 가스 가격이 치솟으며 화석연료의 역할이 재평가되면서 이런 의문이 커진다.
수소는 과연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타개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장된 것인가? 지난해까지 국제적으로 전문가 사이에 토론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런 논란을 벗어나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 에너지 안보를 위해 수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600개 가까이 검토 또는 추진되고 있으며, 2030년까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의 의존을 없애려는 유럽은 수소 사용량을 2배로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석유회사가 수소 사업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키우고, 셸이나 BP 같은 석유 메이저 회사들도 수소 관련 사업 조직을 신설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던 2019년과 대비하면 지금 수소의 역할과 비중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 몇 해 전까지 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기는 잉여전력을 저장하는 보완적 수단 정도로 여겨졌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고압의 액체나 기체 상태로 변환돼 소비지까지 이송된 후 산소와 화학반응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 자동차를 구동하거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수소의 사용처가 늘어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내뿜는 산업인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공정에 청정수소를 사용하는 방안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석탄이나 가스를 대체하는 연료로 수소를 직접 사용하는 방식도 머지않아 상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야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산화탄소의 획기적인 감축을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중립 달성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선박이나 항공기 같이 석유에만 의존하던 분야도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이 연구 중에 있다. 이제 수소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마땅한 방안이 없는 모든 분야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만능키가 되고 있으며 그만큼 미래 사업 기회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2050년 세계 수소시장 규모를 2조5000억달러로 예상했다.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수소경제로 가는 길에는 많은 도전이 놓여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산업공정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최대한 활용해 수소산업을 일으켜왔다. 그런데 수소가 대량 소비되고 이산화탄소 감축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하려면 청정한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유통, 저장, 활용 등 생태계 전반의 균형된 발전이 불가피하다.
또한, 수소 사용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법 제도의 정비와 함께 수소산업이 일정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독자 생존을 할 때까지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얼마 전 청정수소에 대한 정부 인증제와 청정수소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골자로 한 수소법이 여야 합의로 개정돼 수소산업계가 가졌던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의미가 있었다.
수소경제는 세계가 함께 노력해 기술을 공유하고, 표준과 기술 기준을 조화시켜야 가는 길이 빨라질 수 있다. 지난 5월 25일 18개 세계 수소민간협회가 참여해 발족한 ‘세계수소산업연합회(GHIAA)’는 수소산업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정부와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