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술 유출 사건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 출신 직원들이 중국에 핵심 반도체 장비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이들 일당이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기술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초임계 세정장비’ 제조 기술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기도 했다.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줄줄 새 나가고 있다. 지난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만 10건에 달한다.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0년 이후 최대치다.
이에 국민의힘은 해외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놨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국가핵심기술과 방위산업기술 해외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목적범’으로 규정돼 있는 현행법을 ‘고의범’으로 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법상 해외로의 기술 유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사용되게 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처벌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법원의 판결 결과, 1심 재판에서 처리된 62명 중 실형 4명, 집행유예 27명, 벌금형 9명, 무죄 13명으로 실형을 받은 경우는 6.4%에 불과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에서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이라는 문구가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로 수정됐다. 아울러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해 처벌 수위도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한 경우 유기징역 3년 이상에서 유기징역 5년 이상으로 늘리고, 벌금도 15억에서 20억으로 상향해 병과하기로 했다.
솜방망이식 처벌이 이뤄지는 사이 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홍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산업기술 유출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국가핵심기술 35건을 포함해 총 101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사건이 적발됐다. 업종별로는 디스플레이가 2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반도체(18건)와 전기전자(17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중에서도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유출 적발 건수는 지난 5년간 2017년(3건), 2018년(5건), 2019년(5건), 2020년(9건), 2021년(10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에도 3월까지 총 3건이 발생했다. 한 달에 한 개 꼴로 유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생명공학 등 12개 분야 71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술 유출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산업기술 해외 유출 시도에 따른 예상 피해 규모는 약 22조원에 달한다.
홍 의원 측은 “솜방망이식 처벌이 범죄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이마저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여야가 뜻을 같이하고 있고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