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 대출 디지털 전환 가속…저축은행 날았다

입력 2022-06-15 15:12
수정 2022-06-15 15:13

전국 79개 저축은행들이 지난해 2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거두면서 10년 전 ‘부실 악몽’을 완전히 떨쳐냈다는 평가다. 1972년 ‘상호신용금고’란 이름으로 탄생해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은 저축은행 업계가 중금리 대출 활성화,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 노력으로 중저신용자를 위한 금융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96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2020년보다 40.4%(5657억원) 늘어난 수치다. 국내 저축은행들의 연간 순이익은 2017년 이후 5년 연속 1조원대를 달성했다.

업계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은 1금융권인 지방은행들조차 앞섰다. SBI저축은행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3495억원으로 대구은행(3300억원), 경남은행(2306억원), 광주은행(1941억원), 전북은행(1829억원) 등을 제쳤고 부산은행(4026억원)에 살짝 못미쳤다.

저축은행 총자산도 꾸준히 늘고 있다. 79개 저축은행의 총자산은 118조2000억원으로 전년 말(92조원) 대비 28.5%(26조2000억원) 증가했다. 자기자본도 12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21.1%(2조2000억원) 늘었다. 이익 흐름이 좋아지면서 자본으로 전입되는 잉여금이 1조8000억원 불어난 덕분이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저축은행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2011년 발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로 업계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솔로몬·현대스위스·제일·미래·부산 등 상위 업체들이 줄줄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재매각됐다. 저축은행 적자는 2011년 963억원에서 2013년 3828억원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총자산 역시 같은 기간 60조1646억원에서 38조9764억원으로 35% 쪼그라들었다.

저축은행들은 이후 PF를 줄이고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면서 사업 구조 변화를 시도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대출도 늘렸다. 신용평가시스템(CSS)을 고도화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그러자 대출 자산의 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업계 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11년 16.54%에서 지난해 3.35%로 대폭 낮아졌다.

예·적금 상품 가입과 대출 등 주요 금융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등 디지털 혁신도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 이용자가 늘면서 오프라인 영업점은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말 기준 저축은행 영업점은 294곳으로 전년 대비 3곳 줄었다. 2020년 저축은행 영업점이 300곳 아래로 내려간 데 이어 지난해에도 감소 추세가 이어진 셈이다.

SBI저축은행은 2020년 말 기존 모바일 플랫폼을 전면 리뉴얼해 선보인 ‘사이다뱅크 2.0’을 내세워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를 발굴하고 있다. 여러 계좌의 급여 이체 실적을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급여 순환 이체’, 하나의 입출금 통장으로 생활비 예비비 여행비 등 다양한 목적에 따라 관리할 수 있도록 한 ‘통장 쪼개기’ 등이 대표적이다. 사이다뱅크를 통해 올 2월 출시한 ‘복리정기예금(변동금리)’도 최고 연 3.25%의 높은 금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OK저축은행은 정기예금 가입 시 모바일뱅킹으로 타행 잔액을 곧바로 가져올 수 있는 '원샷 개설' 서비스를 지난해 12월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오픈뱅킹을 활용한 원샷 개설 서비스를 통해 금융소비자는 정기예금 가입 과정에서 타행에 예치해둔 잔액을 한번에 가져올 수 있다. 기존에는 타행 계좌에서 일단 요구불계좌로 이체한 뒤 신규 예금 계좌로 또다시 옮겨야 해서 고객 불편이 적지 않았다.

웰컴저축은행은 국내 저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금융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모바일 뱅킹 앱 ‘웰뱅(웰컴디지털뱅크)’에서 올해 초 ‘이자절감 플랫폼’이란 기치를 내걸고 ‘웰컴마이데이터’가 출범했다. 여러 금융사의 대출상품 중 사용자에게 가장 알맞는 상품을 추천해주는 ‘맞춤 대출’이 핵심 서비스다. 맞춤 대출보다 더 낮은 금리를 다른 저축은행으로부터 제시받았다면 금리 차액을 보상해주는 ‘최저금리보상’ 이벤트도 펼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4월 ‘디지털페퍼’를 출시하면서 모바일 뱅킹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디지털페퍼에 비대면 계좌개설, 간편인증, 간편이체, 자동심사 신용대출 등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하루만 맡겨도 최대 연 2%의 금리를 제공하는 디지털페퍼 앱 전용 입출금 상품인 ‘페퍼스파킹통장’도 인기다. 300만원을 초과하는 예치금에 대해선 연 1.5%의 이자율을 제공하며 최대 2억원까지 맡길 수 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주요 저축은행들이 오프라인보다 디지털 뱅킹을 통해 각종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중저신용자에게 다시 금리 혜택으로 되돌려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