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대통령 강조한 반도체 겨눴다…삼성전자 '발동동'

입력 2022-06-14 11:22
수정 2022-06-14 11:29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국토교통부와의 마라톤 협상에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총파업 수위를 높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반도체 산업까지 직접 겨냥하기로 해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화물연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타격 목표"14일 산업계에 따르면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 핵심산업인 반도체를 주요 타격 대상으로 삼아 반도체 물류를 막겠다고 공식화했다.

화물연대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타격을 목표로 반도체 원료업체인 LS니꼬동제련·고려아연 물류에 집중한다는 지침을 조합원들에게 내려보냈다. 지금까지 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화물로 물류난에 버텨왔던 반도체 업계는 표면적으로는 단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파업 장기화 여부를 예의주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S니꼬동제련과 고려아연은 구리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를 포집해 고순도 황산을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웨이퍼 가공 시 실리콘 표면에 부착된 먼지나 각종 금속오염물질 등은 강한 바람으로 떼어낼 수가 없어 액체 형태의 고순도 황산에 담가 녹여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라 소재 세척용으로 쓰이는 고순도 황산 수요 역시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황산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반도체 생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화물연대가 반도체 원료사를 집중 타깃으로 항구 등 물류 거점을 봉쇄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라인은 물론 반도체가 탑재되는 삼성전자·LG전자 가전 부문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급 차질로 각종 완제품 가격까지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화물연대 총파업 때문에 수출품 운송이 지연돼 어렵게 확보한 선박을 놓치거나 항만에 입고된 수입 원자재를 공장으로 들여오지 못해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되는 등의 피해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공장은 이미 생산에 차질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웨이퍼 세척용 소재(IPA, isopropyl alcohol)를 중국에 수출하는 국내 업체의 물류 운송이 막힌 여파다.


고순도 IPA는 강한 증발성을 가진 용제로 전자산업, 특히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 세척 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소재이며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용 세정제로도 쓰인다. IPA를 국내에서 생산해 중국에 수출하는 회사가 한 주분에 해당하는 약 90t의 물량을 제때 선적하지 못하면서 이를 공급받아 삼성전자 중국 공장에 웨이퍼를 납품하는 중국 업체 측에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반도체는 처음부터 거론이 됐던 것이긴 하지만 이 카드까지 쓸 일은 없었으면 했다"며 "일부 외신들도 우리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반도체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반도체 막히면 전분야 가격 상승 불가피"그러나 국민의힘은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조정자의 역할을 할 뿐, 협상 대상자는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라는 것이다.

이에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장기화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앞서 2003년 첫 총파업 사태는 보름 동안 이어졌고 역대 최악의 물류대란으로 꼽히는 2008년 1주간 이어진 총파업 당시에는 정부 추산 피해액이 8조원을 기록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총파업 사태로 발생한 산업피해액은 약 1조6000억원 수준이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이번 파업에 대비해 원재료 재고를 미리 확보해둔 만큼 아직은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수의 관계자들은 "파업 장기화에 대한 위기감이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반도체가 막히면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등 전 분야에 걸쳐 가격 상승과 출고 지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