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약사 눈치 보느라 혁신 기술 외면한 복지부

입력 2022-06-14 17:16
수정 2022-06-15 00:12
“3년6개월간 희망고문만 하다가 이제서야 내놓은 답은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화상투약기를 개발해 규제샌드박스 심의를 기다려온 쓰리알코리아 박인술 대표의 말이다. 약사인 박 대표는 2013년 화상투약기를 개발했다. 약국이 문 닫은 시간에도 환자들이 일반의약품을 안전하게 구입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먼 거리에 있는 약사가 환자와 화상 상담한 뒤 약을 선택하면 환자가 이를 받아가도록 한 기기다.

환자 불편을 줄이기 위한 제품이지만 서비스는 시작조차 못 했다. 비대면 약 판매 등을 막고 있는 약사법 탓이다. 박 대표는 2019년 1월 시범사업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사업을 신청했다. 수억원을 들여 기기 설비까지 보강했다. 하지만 아직 심의조차 받지 못했다. 정부가 ‘약사들의 반대’를 이유로 회의 일정을 계속 미뤄왔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마침내 심의 일정을 샌드박스 신청 3년 반 만인 오는 20일로 잡았다. 정작 도움을 줘야 할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오히려 딴지를 걸고 나섰다. ‘해당 약국 개설자나 해당 약국에 근무하던 약사만 화상 상담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약국 앞에 투약기를 설치하고 불침번 약사를 세워 서비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벽 1시까지 운영하는 심야공공약국조차 근무할 약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나온 비대면 플랫폼 서비스에 정부가 도리어 ‘현실의 족쇄’를 채운 것이다.

더욱이 복지부가 제시한 조건은 약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동안 약사들은 ‘편의점 판매 상비약과 같은 품목’으로 ‘약사 1인이 한 개 기기를 관리하면’ 서비스 시행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주무부처가 사업자에게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 면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화상투약기는 오작동 위험 등을 막기 위해 모든 투약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 24시간 냉장 보관해 약이 상할 위험도 낮다. 게다가 규제샌드박스 기간 동안에는 사업자가 수익 한 푼 낼 수 없다. 환자 안전을 해치고 의료 상업화를 부추긴다는 약사들의 반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수차례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 태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헬스케어업계의 지적이다. 기득권을 쥔 이익단체가 아닌 국민 편에 서는 게 새 정부 규제 완화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