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산업 분야 규제 33개를 개선하기로 했다.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차 등 기술 발전에 역행하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규제 개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무조정실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에너지·신소재 분야 12건, 무인이동체 5건,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5건, 바이오헬스케어 10건 등의 규제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고 13일 발표했다. 모바일 심전계, 뇌영상 진단보조 소프트웨어 등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규제는 ‘경미한 변경’ 외에 모두 규제하는 방식에서 ‘중대한 변경’ 외에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소프트웨어를 유지·보수하거나 보안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한 달 이상의 시간과 100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들여 허가를 새로 받도록 한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741개 관련 제품은 핵심 성능, 분석 알고리즘, 개발 환경 등 중요한 변경이 있는 경우에만 허가를 새로 받으면 된다.
드론의 야간 비행 시 필요한 안전장비 요건은 포괄적으로 바뀐다. 안전장비 중 적외선 카메라를 ‘적외선 카메라 등 야간 비행 중 주변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로 바꾸는 식이다. 이로 인해 사진을 3차원 공간 형태로 인식하는 스테레오 비전카메라 등 최신 장비를 사용할 때도 안전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된다.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지구의 운송사업 요건은 ‘노선을 정하여 운행하는 경우만 해당한다’는 문구를 삭제해 실시간 경로 설정 방식의 서비스를 허용키로 했다. 드론과 자율주행 배송로봇의 택배 사업도 조만간 본격화할 전망이다.
첨단산업 분야의 대학원 정원 기준도 완화한다. 정원을 늘리기 위해선 교원, 교사, 교지, 수익용 기본재산 등을 확보해야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차세대 반도체 등의 분야는 교원만 확보하면 정원을 순증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의 정기검사 주기도 위험도가 낮은 시설은 완화하기로 했다. 시설 위험도와 무관하게 모든 사업장의 검사 주기를 1년으로 정해놓은 것이 과도한 규제라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9053곳 중 가·나등급보다 안전한 다등급으로 평가된 5000여 곳은 2년마다 검사받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을 통해 2024년부터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신규 가상자산 사업자의 시장 진입 문턱은 낮추기로 했다. 현재 서비스 운영을 위한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요건에선 2개월 이상 운영한 실적이 필요한데, 예비인증 제도를 도입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키로 했다. 화물차 휴게소 건설 시 반드시 주유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제는 수소충전소만 건설해도 되는 것으로 바뀐다. 친환경 화물차 보급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자체등급분류제도 도입, 게임산업 주52시간제 탄력 적용 등 문화 분야 규제 개선 과제를 선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규제개혁이 곧 국가 성장”이라면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위시한 규제혁신 체계의 조속한 가동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오찬을 겸한 주례회동을 하고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성장을 위해선 시대에 뒤떨어진 각종 규제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한 총리가 보고한 규제심판제도 도입에 관심을 보였다. 규제심판제는 피규제자 입장에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로 규제심판관을 구성해 중립적 심사 및 규제 개선을 권고하는 제도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본인도 경제계 간담회 등에서 피규제자 입장의 이런 제도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했다”며 “총리가 제도를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강진규/성수영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