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도 2주일 남짓 있으면 마무리된다. 연초 비교적 낙관적으로 출발했던 세계 경제는 지난 2월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제봉쇄 조치, 신흥국 금융위기 등과 같은 대형 변수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하고 있다.
상반기에 불거진 대형 변수들은 ‘성장률 훼손’과 ‘물가 상승’에 유독 큰 영향을 준다는 게 공통점이다. 세계적인 예측기관들이 작년 말과 이달에 내놓은 전망치를 비교해 보면, 대형 변수들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1.3%포인트 이상 떨어뜨리고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온다.
예측기관들이 세계 경제를 보는 시각도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경기 논쟁은 ‘과연 침체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벌어졌지만, 4월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서는 ‘슬로플레이션’ 우려가 처음으로 제기됐다. 그 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세계은행(WB)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면 WB의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미국 경제는 올 1분기 성장률이 -1.5%로 추락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 이후 Fed의 물가 목표치(2%)를 4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 지속되다가 5월에는 8.6%로 한 단계 더 뛰어올라 증시를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
중국 경제 상황은 더하다. 작년 1분기 18.3%에 달했던 성장률이 올 1분기에는 4.8%로 급락했다. 경제봉쇄 조치가 집중된 2분기에는 2%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0% 내외로 추락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2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 달이 지날 때마다 2배씩 뛰고 있다.
부존 자원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그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유로 경제는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고 6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대로 뛸 것으로 예상된다.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정책 대응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은 2차 오일쇼크 파장이란 ‘단선형 성격’인 데 반해 이번에는 지정학적 위험, 디스토피아, 이상 기후, 공급망 훼손, 출구전략, 경제봉쇄 조치 등과 같은 ‘다중 공선형 성격’이 짙어서다.
경기침체가 우려되지 않았던 작년 10월 IMF의 권고대로 물가 잡기에만 몰두해 온 각국 중앙은행은 이제 경기와 물가, 그리고 금리 간 ‘트릴레마’ 국면에 빠져 있다. Fed처럼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다간 경기가 더 침체되고, 중국 인민은행처럼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확률이 높아진 상황이다.
각국의 대응은 달라지고 있다. 일단 경제의 ‘컨트롤타워’부터 중앙은행 수장에서 최고통수권자로 격상됐다. 정책 우선순위도 금리 인상 등과 같은 총수요 관리대책에서 총공급 중시대책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1980년 초의 감세뿐만 아니라 규제 완화, 노사 화합, 생산성 증대, 인프라 확충, 공급망 확보 등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우리 경제는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한은은 정작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확률이 낮다고 보고 있다. 복합위기, 경제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새 정부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그 근거도 성장률이 크게 낮아진 잠재 성장률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높은 점을 들고 있어 취약하다.
한은 입장대로 경기 부담이 없어 물가를 잡는 데 우선순위를 두더라도 실업률이 높아지면 노조가 강한 우리 경제 여건상 사회적 저항이 커질 수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도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확률이 낮다는 한은의 인식부터 개선돼야 할 때다.